[인물 오디세이] 리오 김 PGA 헤드프로…꿈을 좇는 집념, 불가능은 없다
의류 도매업체 운영사업가로 승승장구
골프입문 1년 만에 싱글
로컬대회 우승 휩쓸어
40대 초반 클래스A 도전
10년 만에 자격증 취득
피아니스트 전공 살려
성당서 반주자 봉사도
불혹 넘겨 용감무쌍하게 새 길 찾아 떠나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부터 앞서는 게 사실. 특히 지금껏 쌓아온 커리어가 성공적인 이들이라면 더 더욱이 그렇다. 그러나 도전에 익숙한 이들에게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언제고 자신의 마음 속 소리를 좇아 꿈을 따라 길 떠날 준비가 돼 있다. 지금껏 그래왔듯. PGA 헤드프로 리오 김(55·leoniakim.com)씨 역시 그러하다. 성공적인 의류 사업가로 살아오다 40대 초반 PGA 클래스A 멤버에 도전, 젊은 남성 골퍼들도 힘들다는 자격증을 거머쥐었다. '포기란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라는 우스개 소리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그녀의 집념어린 10년 도전기를 들어봤다.
#피아니스트에서 의류사업가로
서울 출생인 그녀는 예원예고 졸업 후인 1981년 이화여대 피아노과에 진학했다. 모교 대학원 재학 중 시민권자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1985년 LA로 왔다. 1987년 USC 음대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LA다운타운에서 원단·의류사업을 하던 남편의 권유로 이듬해 FIDM에 입학했다.
졸업 후 남편의 사업체에서 일을 시작한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발군의 실력을 나타냈다. 그녀가 내놓는 디자인마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대박을 친 것이다. 이후 사업은 더욱더 승승장구했고 90년대 중반 부부는 인도네시아에 현지공장을 건립해 사업체 확장을 꾀했다. 그렇게 인도네시아로 사업기반을 옮길 무렵 여유 시간이 생긴 그녀는 모친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워낙 바쁘게 살아 골프장 근처에 가본 적도 없었죠. 그런데 학창시절 체육부장을 도맡아 할 만큼 운동에 소질이 있어서 그랬는지 시작한 지 1년 반쯤 지나니 싱글을 치게 되더라고요."
이후 그녀는 각종 로컬 골프대회 우승을 휩쓸며 아마추어 골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매일 하루 5~6시간씩 연습에, 1주일에 꼭 2~3번은 라운딩을 했고 개인레슨도 꾸준히 받았어요. 돌이켜보면 골프에 미쳐 산 셈이죠.(웃음)"
이런 무시무시한 연습량 덕분에 그녀는 골프 입문 5년 만에 프로 골퍼들에게도 드물다는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렇다고 거기서 연습을 멈출 그녀가 아니다.
"의사는 아예 연습을 하지 말라 했는데 그래도 연습장에 나가 풀스윙은 못하고 퍼팅연습만 했죠. 제가 가만히 있는 성격이 못돼요.(웃음)"
#PGA 클래스A에 도전하다
이후 그녀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골프레슨 봉사활동을 하면서 골프 레슨에 대한 재능과 즐거움을 발견하게 돼 PGA 티칭프로에 도전한다.
"가르치는 게 적성에 맞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왕 시작한 거 전문가가 돼 보자 싶어 PGA 클래스A 멤버에 도전하기 했죠. 주변에서 다들 뜯어 말린,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죠.(웃음)"
PGA 티칭프로가 되기 위해선 PGA 클래스A 멤버 자격증을 따야하는데 PGA 클래스A 멤버 자격증은 단순히 티칭프로 뿐만 아니라 골프클럽 운영부터 코스 디자인, 대회운영 등 골프 전반에 관한 이론 및 실무 능력 테스트까지 통과해야만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 거기다 대학졸업과 맞먹는 최소 4~6년의 시간과 1만5000~2만달러의 비용이 소요되는데다 총 응시자의 15% 내외만이 최종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어 자격증 취득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특히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는 골프클럽에 취직해 실무 경험을 쌓는 것은 필수다. 그러나 중년의 동양인 여성을 써주겠다는 골프클럽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클럽 매니저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골프클럽에서 8시간을 기다려보기도 하고 50번 넘게 이력서를 내고 인터뷰도 했지만 번번이 떨어지기 일쑤. 지금껏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사업가로 탄탄대로만을 걸어왔던 그녀였기에 좌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싶었다.
"맞아요. 이 자격증을 따느라 보낸 10년간 인생 공부를 다시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골프클럽에서 캐시어부터 일하면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사회경험을 하면서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게 됐죠. 자격증보다 그게 더 큰 소득이 아닌가 싶어요."
이후 오전엔 골프클럽에서 일하고 퇴근 후엔 공부하느라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일상이 수년간 이어졌다. 덕분에 좌우 2.0이던 시력은 뚝 떨어져 안경까지 쓰게 됐을 정도. 이처럼 독하고 끈질기게 공부에 매달린 끝 드디어 그녀는 지난해 3단계 최종시험을 통과하고 PGA 클래스A 멤버가 됐다.
"합격 소식을 듣고 펑펑 울었죠. 그 10년간 가족과 친구들이 뭐가 부족해서 그러느냐며 말린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온 제 자신이 정말 대견스러웠으니까요."
#꿈은 이뤄진다
현재 그녀는 3년 전부터 일하고 있는 실마 엘카리소 골프코스(elcarisogc.com)에선 헤드프로로, 글렌데일 숄캐년 골프클럽(schollcanyongc.com)에선 티칭프로로 근무하며 초등학생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의 꼼꼼하면서도 전문적인 레슨에 반한 수강생들의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올 여름엔 주니어 캠프를 맡아 가르치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인터뷰 도중 그녀의 셀폰엔 문자 수신 알림음이 연신 울려댔다. 주로 수강생들에게서 오는 메시지들인데 그녀가 그 중 한 개를 보여줬다.
"70대 백인 시니어신데 40년간 골프를 쳤는데도 점수가 100타 밑으로 떨어지지 않아 제게 왔는데 레슨한 지 반년도 채 안 돼 싱글이 됐다고 너무 좋아하네요. 가르치는 게 힘들다가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날아갈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인지 그녀의 수업은 제 시간에 끝나는 법이 없다.
"제 성에 차지 않으면 수업을 끝낼 수가 없어요. 주변에선 사서 고생한다고 하는데 어쩌겠어요. 잘 가르치고 싶어 티칭프로가 된 거 이왕이면 하나라도 더 잘 가르쳐줘야 직성이 풀리는 걸요.(웃음)"
현재 글렌데일 한 성당에서 반주자로 봉사하고 있는 그녀는 최근 전문가에게 3년간 실용음악을 지도 받았는데 조만간 실용음악 합주단을 꾸려 불우이웃들을 위한 연주공연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참 재주도 많다는 생각이 스칠 찰나, 천재도 노력하는 사람은 못 이긴다는 케케묵은 글귀 한 줄이 스쳤다. 그리하여 흉내조차 불가해 보이는 그녀의 노력과 집념이 만들어 낸 지금의 그린 위 모습이 참으로 근사해 보였다.
이주현 객원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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