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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달라스 찜질방

정만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가작
[email protected]
LNG Specialist

아침저녁으로 날이 선선해지니 슬슬 찜질방이 그리워진다. 한인 동포들이 많이 사는 미국 대도시에는 규모가 제법 큰 한국식 찜질방이 여러 곳 있는데, 텍사스지역은 2008년 달라스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텍사스의 여름은 낮 최고기온이 100℉를 넘나드는 날이 많고, 겨울철 석 달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낮 기온이 80℉ 이상 올라가는 더운 곳이어서 찜질방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여름에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11월에 접어들면서 낮에는 70℉, 아침저녁으로는 50℉ 정도까지 기온이 떨어졌다. 날이 춥다는 느낌이 들면 찜질방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옛 추억을 회상하며 자주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부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달라스 찜질방에 가곤한다. 한국의 친구들에게 270마일 떨어진 곳으로 찜질하러 간다고 하면 놀라는 눈치다. 찜질방이 아무리 좋아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 오는 거리를 하루 만에 다녀온다는 게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아침 7시경에 휴스턴을 출발해서 4시간 운전하여 달라스에 도착한 후 4시간 정도 찜질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빡빡한 일정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곳을 가는 이유는 뜨거운 물에 지친 몸을 담그고 이태리타월로 때도 밀고 황토방, 수정방, 불한증막 등 오감을 자극하는 여러 방을 체험하고, 식혜와 맥반석 계란에 미역국까지 먹고 나면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서 온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개장 초기에는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왔는데 요즘은 이용객이 많아 숙면을 취할 수 없다 보니 상쾌했던 몸이 오히려 도루묵이 되는 것 같아 당일치기로 오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찜질방은 1994년 부산에 생겼다. 그 이후 1995년에 서울로 번지면서 급속도로 인기가 상승했다. 우리 부부가 찜질방의 참맛을 알고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2년부터였다. 늦가을 어느 날, 강원도 치악산에 있는 구룡사를 둘러본 후 천주교 배론 성지 순례를 위해 치악산을 넘어 제천 쪽으로 가다가 날이 저물어 숙박비도 아낄 겸 황토 찜질방에 들어갔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다소 쌀쌀했던 날씨 탓이었는지 안이 무척 따뜻하고 아늑했으며 그때 먹어 본 미역국 맛은 잊을 수가 없다. 평소 집사람이 끓여주는 미역국도 일품이지만, 그곳의 미역국은 오십 평생을 살면서 먹어본 중 최고였다. 이런저런 추억이 우리를 찜질방 마니아로 만든 것 같다. 물론 아내가 나처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나라도 산업화의 영향으로 주거 형태가 점차 아파트로 바뀌면서 샤워 문화가 활성화되긴 했지만, 찜질방이 유행하기 전까지 대부분 국민은 대중목욕탕을 이용했다. 나도 애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일을 가족보다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두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는 일은 미루지 않았다. 서로 등을 밀어주면서 부자간의 정을 나누고 뜨거운 사우나에 들어가서 누가 더 오래 견디는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애들이 사춘기가 되고 점점 더 일에 파묻혀 살다 보니 목욕탕에 함께 다니는 건 어려워졌지만 함께 다닐 때는 뜨거운 사우나에 들어가서 누가 더 오래 견디는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두아들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어 고맙다.

달라스 찜질방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외국인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백인과 흑인은 물론 히스패닉까지 다양한 인종이 함께 온탕에 들어앉아 조금은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뜨거운 황토방에 누워서 땀을 빼고 있는 거구의 흑인을 보고 있으면 저들도 우리가 느끼는 찜질방의 참맛을 알기나 할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불가마도 마다치 않고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제는 그들도 찜질방 마니아로 인정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온돌문화와 한국인들이 뜨거운 찜질방 바닥에 누워 뜨거운 것을 참아가며 땀을 빼고 피로를 풀면서 시원함을 느끼는 카타르시스Catharsis의 참 맛은 모를 것이다. 미국인들은 20분 정도 샤워를 하는 게 일반적인데 우리의 목욕 문화는 2~3시간 정도는 해야 직성이 풀린다. 세신사에게 때 마사지를 받는 거구의 외국인들을 자주 보게 된다. 물어보니 때를 밀고 나면 몸이 가벼워져 날아갈 것 같은 상쾌한 기분 때문에 올 때마다 밀지 않고는 못 배긴다며 웃었다. 그 시원함을 알다니 놀라웠다.

작년 여름 중국 실크로드 문화탐방을 갈 겸 해서 한국을 다녀왔다. 인천공항에는 여행 출발 전날 저녁에 도착했다. 밤늦게 서울로 들어갔다가 다음 날 새벽에 다시 인천공항으로 나오는 것이 문제였다. 고맙게도 그러한 수고들을 인천공항 지하에 있는 찜질방이 단돈 2만 원에 해결해 주었다. 안은 나와 같은 처지의 많은 여행객으로 붐볐고 밖에서 번호표를 받고 차례를 기다리는 이색 풍경도 보았다. 이용객이 많다 보니 불편신고가 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서로를 배려하는 미덕이 아쉬웠다.
드디어 우리가 사는 휴스턴에도 내년쯤 찜질방이 개장한다는 소식이 있어 동포들이 많이 고대하고 있다. Katy 지역에 한국 마켓과 함께 복합시설로 추진되고 있다는데 자꾸 늦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지만, 이제는 달라스에 가지 않아도 자주 찜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정만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가작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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