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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코파비다 카페 스티브 장 대표…한 잔의 커피, 한 잔의 삶을 나누다

아태분쟁조정센터 소장
LA카운티 컨설턴트 근무
5년 전 런칭, 총 5곳 운영
'LA 베스트 커피 톱10' 올라

불우이웃·태풍피해 돕기 등
꾸준히 사회환원·기부 활동
"하고 싶은 일 도전하면
삶의 의미·목적은 따라와"


굳이 링컨의 명언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중년 이후 얼굴은 참 많은 걸 '누설'한다. 한 사람이 살아온 역사랄까 이력서랄까가 그 얼굴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말이다. 그를 첫 대면했을 때 첫인상은 마음씨 좋은 '교회 오빠'였다. 이후 당연하게도 합리적이고 실력 있는 사업가의 모습도 그 위로 스쳐갔다. 그러나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의 얼굴엔 지금껏 좋은 삶을 살고자 했던 한 청년의, 한 가장이 모습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바로 최근 떠오르고 있는 스페셜티 커피전문점 코파비다(Copa Vida) 스티브 장(47) 대표다. 제법 쌀쌀해진 가을 아침, 달콤 쌉사름한 커피향이 알맞게 유영하는 패서디나 카페에서 그를 만나봤다.

#변호사 꿈 접고 분쟁조정관 되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 1978년 LA 다우니 인근으로 가족이민 온 그는 워렌고교를 졸업하고 캘폴리포모나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초등학교 시절 참 많이 힘들었죠. 인종차별로 인한 불합리한 상황이 생겨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를 해결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마다 마음 속으로 나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죠."

그런 유년시절 경험 때문에 그는 약자를 대변해주는 변호사를 꿈꾸며 대학 졸업 후 법대에 진학했다. 법대 입학을 앞두고 1994년 그는 아태분쟁조정센터(APADRC)에서 분쟁조정관(mediator)으로 일했는데 그곳에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된다.

"대학시절 4·29 LA폭동을 겪으면서 한흑 커뮤니티 간 중재의 필요성을 절감해 커뮤니티 봉사를 시작했죠. 그런데 당시 센터 내 변호사가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는 법정보다는 양측 모두에게 해법을 제시하는 분쟁조정관이 제게 더 잘 맞는 것 같다고 권유해 센터에 남았죠."

그래서 그는 법대 입학을 포기하고 LA검찰청이 제공하는 분쟁조정관 교육프로그램을 이수, 공인 분쟁조정관 및 공인 분쟁조정관 트레이너격증을 취득했고 1998년엔 센터 소장으로 승진해 인종 간 혹은 커뮤니티 간 분쟁조절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또 그곳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 두 딸을 두고 있다. 1998년 UCLA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1999년 LA카운티 인간관계위원회(LACCHR)로 이직, 시니어 컨설턴트로도 근무했다.

#사업 경영에 뛰어들다

그렇게 커뮤니티를 위해 일하는 것이 천직이라 믿었던 그에게 다시 터닝 포인트가 찾아온다. 당시 미국 내 유명 체인 레스토랑에 에그롤피와 아시안 국수 등을 납품하는 유명 식품업체인 윙힝국수(Wing Hing Noodle Company)를 25년간 운영해오던 장인이 암 진단을 받으면서 그에게 경영참여를 부탁한 것이다. 고심 끝 그는 2001년 장인의 회사에 입사, 사업체 경영이라는 새로운 커리어에 도전한다. 이후 회사는 빠르게 성장해 공장을 3곳으로 확장할 수 있었고 사업품목도 일식국수를 비롯 이탈리안 푸드로까지 확장하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대학 졸업 후 10년 가까이 분쟁조정 전문가로 일해 왔던 그가 경영자로 변신한 것도, 이후 일군 사업적 성공도 신기하다 했더니 그가 웃는다.

"그런가요? 이민 후 부모님께서 포토숍에서부터 가발가게 등 다양한 사업을 했는데 당시 저도 가게에 나가 일을 도왔죠. 그러면서 중학생 때부터 사업에 대해, 특히 고객서비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경영이라는 게 결국 사람 간 혹은 조직 간을 중재하는 일에 다름 아니거든요.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분쟁조정관으로서의 경력이 사업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된 셈이죠."

그렇게 잘나가는 사업체였지만 그와 경영진은 2011년 회사를 매각했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패밀리 비즈니스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고 경영에 참여하고 있던 처가식구들도 2세 경영의 한계를 느껴 논의 끝 매각을 결정하게 됐죠."

#커피에 미치다

사업매각 후 그가 창업 아이템으로 삼은 건 커피숍.

"그 무렵 전문경영인에게 앞으로 뭘 하면 좋을지 자문을 구했더니 좋아하는 걸 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족과 신앙, 야구 다음으로 제가 좋아하는 게 커피 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그는 1년간 유럽과 일본, 남미 등을 여행하며 본격적으로 커피와 커피숍 운영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특히 코스타리카 커피농장에서 운영하는 커피학교에 들어가 커피 수확부터 로스팅, 바리스타 공부까지 마쳤다. 그리고 그때 코파비다라는 커피숍 이름도 지었다.

"코파비다는 스패니시로 한잔의 라이프(cup of life)라는 뜻인데 인생을 커피처럼 나누자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커피만 파는 공간이 아닌 그 속에 문화가 있고 사람들 간의 소통이 있는 인생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그리고 2012년 패서디나 올드타운에 코파비다 카페(copa-vida.com)와 로스팅 컴퍼니를 오픈했다. 처음 몇 달은 고전했지만 카페는 조금씩 동네 주민들에게 사랑받기 시작했고 1년쯤 지나니 주말엔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후 코파비다는 이터LA, LA위클리, LA매거진 등 유명 매체가 뽑은 'LA 베스트 커피숍 톱10'에 이름을 올리면서 명실상부 LA를 대표하는 스페셜티 커피숍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3년 뒤인 2015년 샌디에이고 2호점을 필두로 샌디에이고에만 3곳의 지점을 오픈했고 칼스배드에도 브랜치를 냈다.

또 내년엔 LA카운티에 2곳을 더 열 예정이라고. 그러나 무엇보다 코파비다가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나눔의 정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기 때문. 오픈 후부터 지금까지 그는 LA아동병원을 비롯 굿네이버스, 저스티스라이징 등 비영리단체에 해마다 적잖은 금액을 기부해왔고 지난 8월엔 '라테 콘테스트'를 열어 수익금 전액에 매칭펀드를 더해 텍사스 허리케인 피해자들에게 8000달러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말한다. 그저 마음의 소리를 따라오다 보니 이곳에 이르게 됐다고. 남 보기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온 것 같은 그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불안했고 나중에 후회할까봐 걱정도 했지만 삶의 목적을 따라 걷다보니 이곳에 이르렀다고. 그리하여 그는 젊은 세대를 향해 걱정하느라 시간만 보내기 보단 하고 싶은 일을 실천에 옮기라 주문한다. 움직이는 공이 방향성을 가지듯 도전하다 보면 삶의 의미와 목적도 함께 따라오게 된다고.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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