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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웃 사촌

좋은 이웃이 멀리 있는 형제보다 낫다. (Near neighbor is better than a distant cousin.)

만약이라는 단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만약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쓰인다. 내가 만약에 영어를 조금만 더 알아들을 수 있었다면, 좋은 이웃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동네는 다른 곳으로 통하는 길이 없어 한 바퀴 돌면 그만인, 97채의 고만고만한 집들이 모여있다. 옛날 집들이 모여있고 학군도 괜찮아서, 여기서 살다가 애들은 자라서 독립하고 우리는 노인이 된다. 어느 날 한 사람만 남아 외기러기로 살다가, 어딘가 닮은 자식이 나타나 집을 팔고 나면 새로운 가족이 나타난다.

아침 산책길에는 내가 이름을 지어준 정겨운 이웃을 만난다. 모퉁이를 돌아가면 50년 전부터 살아온 그 집에서 할머니를 수십 년 전에 먼저 보낸 꽃할아버지는 온갖 꽃들을 집 바깥에 가득 심어서 우리를 기쁘게 해준다. 보랏빛 울타리 콩이 이쁘다고 하니 그다음 봄에 모종을 한 아름 갖다 주셔서 심었는데, 거의 다 죽었다. 겨울에는 남쪽 어딘가 따뜻한 자식네에서 지내시곤 했는데, 올봄에는 볼 수가 없어 궁금하던 차에 그만 지난겨울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느 날 굴착기가 마당에 있던 돌 벤치, 돌 항아리, 분수, 돌사자를 치우고 꽃동산을 싹 밀어버리고 잔디를 깔더니 얼마 뒤에 낯선 백인 가족이 이사 왔다. 해마다 할아버지랑 꽃들을 볼 줄 알았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부지런히 얻어다 심을 걸 그랬다. 할아버지의 영어가 알아듣기 싫어서 피해서 돌아간 내가 밉다. 있을 때 잘할걸.



나에게 우렁차게 굿 모닝을 외치는 키도 크고 잘생긴 할아버지는 오늘도 옆자리에 해롱해롱 병약한 할머니를 소중하게 앉히고 아침을 먹으러 부릉거리며 나간다. 비슷하게 키가 크고 마른 남편과 다니려면 나도 코스모스같이 가냘퍼야 남편이 힘들지 않을 텐데 무거워서 큰일이라며 걸음을 조금 더 빨리해 본다. 식탐이 많은 나에게 남편은 협박한다. 운동 안 하고 게을러서 아프고 뚱뚱하면 노인연금 타서 맥도널드나 짜장면 먹으러 갈 때 안 데리고 간다며 미국에 와서 텍스 보고가 없는 나를 겁먹게 했다. 그러나 부인은 남편의 반절 연금 혜택이 있다는걸 몇 년 전에 알고 나서는 안심이 되었고, 그달에는 몸무게가 1파운드가 늘었다.

뒷집 노씨는 FDA를 다녀서인지 건강하지만, 얄미운 쥐같이 생겼다. 치대 다니는 아들만 둘이다. 마누라가 참 좋고 애들 나이가 비슷해서 울타리를 넘나들며 친하게 지냈는데, 언젠터인가 아줌마가 안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 같은 젊은 여자가 야실야실 다니기에 누구냐고 하니 본처는 이혼하고 중국으로 가버렸단다. 노 씨는 새장가를 가더니 집도 고치고 잔디도 사람 사서 깎고, 아들들은 몇 년째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미국 와서 고생 많이 한 조강지처를 버린 나쁜 놈이라며 어쩌다 보더라도 눈부터 흘긴다.

처음 동네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살던 분들은 거의 물갈이가 된듯하다. 오며 가며 안녕하며 웃기만 해야 하는 답답한 정겨운 이웃을 대하며, 만약에 지금이라도 영어를 갈고 닦으면 좀 더 친해질 수 있을 텐데 하면서 턱없는 영어에 욕심을 낸다.

박명희/VA 통합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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