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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장관이 조세회피처 통해 러와 '수상한 거래'

트럼프 최측근 윌버 로스
미국과 유럽 제재 대상인
러 기업에 투자 거액 수익
영국 여왕도 조세회피처 이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조세회피처에 설립한 유령회사를 통해 미국 정부가 경제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러시아 기업인들이 소유한 에너지 기업과 거래해 거액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회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를 폭로했던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5일 조세회피처로 유명한 영국령 버뮤다의 로펌 '애플비(Appleby)'의 내부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내용을 공개했다.

유출된 자료에 따르면 로스 장관은 케이맨 제도에 설립한 'WL 로스 그룹'을 통해 2011년 조세회피처인 마셜제도에 본사를 둔 해운회사 내비게이터 홀딩스의 지분을 인수했다. 내비게이터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위 키릴 샤말로프와 미 정부의 제재 대상 게나디 팀첸코, 레오니드 미켈슨 등이 공동 소유한 에너지기업 시부르와 오일·가스 수송 계약을 맺어 연간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로스 장관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관련해 미국 정부가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기업인들이 소유한 회사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한 셈이다.

내비게이터 홀딩스에 대한 로스 장관의 지분은 한때 31%였지만 장관에 취임한 지난 2월에는 축소됐다. 하지만 아직 200만달러에서 1000만달러 상당의 지분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 장관은 1990년대 트럼프 대통령이 운영하던 카지노의 파산을 막는 데 기여하는 등 25년 이상 알고 지낸 사이다. 트럼프의 자서전 작가가 "로스가 없었다면 트럼프는 백악관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최측근이다.

상무부 대변인은 "로스 장관은 푸틴 대통령의 사위 등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로스 장관이 관리하는 투자펀드가 내비게이터 주식의 과반을 가진 적도 없고, 시부르 자체는 경제 제재 대상이 아니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리처드 블루멘탈 민주당 상원의원은 "미국인들은 철저한 조사가 있은 후에야 로스 장관이 장관 적임자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조사를 촉구했다.

대선에서 거액의 선거자금을 후원하며 트럼프를 지지했던 이들의 이름도 등장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 설립자 폴 싱어,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 헤지펀드 투자자 로버트 머서 등이 애플비의 고객 명단에 있었다.

러시아 사업가 유리 밀너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제러드 쿠슈너의 부동산 업체에 투자한 것도 발견돼 도덕성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쿠슈너는 2014년 말 동생 조슈아 재러드와 함께 부동산 창업기업 '캐드리'를 창업했는데 이 회사에 밀너가 85만달러를 투자했다. 이 회사는 2016년 트럼프를 지지한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을 포함해 1억3300만 달러의 벤처캐피털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쿠슈너는 2017년 1월 백악관 선임고문에 취임하면서 정부윤리청에 캐드리 지분명세에 대해 신고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자신의 지분이 2500만 달러라고 수정 신고했다.

또 밀너가 운영하는 펀드는 2011년 러시아 국영 VTB 은행으로부터 1억9100만 달러를 받아 트위터 지분 1100만주(2%)를 매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러시아 최대 국영 에너지기업인 가스프롬도 밀너의 투자펀드를 통해 2012년 페이스북이 상장하기 직전 7800만주(10억 달러·3%)를 확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VTB 은행이나 가스프롬 등 러시아 국영기업은 미국의 경제제재 대상에 올라 미국 기업 투자가 불법이었으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위장 계열사를 통해 트위터, 페이스북에 투자한 것이다.

한편, 이번 자료에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사유 재산 1000만 파운드(약 145억원)도 조세회피처에 투자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여왕의 재산을 관리하는 랭커스터 공국은 여왕의 재산 1000만 파운드를 조세회피처인 케이맨 제도와 버뮤다의 기금에 투자했으며 일부는 빈곤층을 착취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영국 가전·생활용품 체인 브라이트 하우스 등에도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랭커스터공국 측은 "여왕은 어디에 어떤 투자가 이뤄지는지 알지 못하며 부적절한 투자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BBC방송은 여왕의 재산이 불법 투자된 정황은 없지만, 역외 투자에 참여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측근이자 그의 정치자금 모금책인 스티븐 브론프맨은 케이맨 제도에서 운용 중인 펀드에 수백만 달러를 옮긴 게 드러났다. 애플과 나이키 등도 역외기업을 보유하며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도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번에 유출된 문서는 1340만건에 달하고, 세계 67개국 언론사가 공동 분석에 참여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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