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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트럼프 뒤에 어른거리는 아베의 그림자

손열/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취임 후 첫 아시아 투어를 나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맞는 서울과 도쿄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서울은 기대감보다 불안감이 팽배한 조심스러운 분위기인 반면 도쿄는 정상 간 밀월 관계와 미·일 동맹의 공고함을 축하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당선 불과 8일 만에 뉴욕 트럼프 타워를 방문했고, 정부 출범 후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이후 무려 16회 전화 통화를 통해 과거 레이건-나카소네, 부시-고이즈미 밀월 관계에 버금가는 우정을 쌓았다.

트럼프 정부의 동맹에 대한 거래 지향적 접근으로 여러 동맹국이 우려하는 가운데 유독 일본은 정상 간 밀월 관계로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제거해 왔다.

여기서 유의해 보아야 할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정책에 대한 아베 총리의 압력이 상당할 것이란 점이다.

실제 양 정상 간 전화 통화 내용의 대부분은 미·일 문제가 아니라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의견 교환이었다. 양국은 북한 위협 대응을 한·미·일 안보 협력으로 풀어 가고자 하나, 문제는 미·일의 안보적 이해가 한편으로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 다른 한편으로 북한에 대한 압력과 제재로 수렴돼 한국과 일정한 편차를 보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의 이해를 반영하는 한·미·일 공조를 이끌려면 미·일, 특히 일본과 긴밀한 대화와 협조가 대단히 중요하다.

아베 정부는 지난 총선거에서 국회 해산의 명분을 김정은에 의한 '북풍'으로 삼고, 국난 돌파란 슬로건으로 자민당의 압승을 이끌었다.

연립정권이 개헌선을 넘는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해 역대 최장기 정권을 이어갈 태세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국민의 지지가 강고했다기보다는 야당의 분열과 난립 덕택이었다.

아사히신문의 10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37%로 반대인 46%보다 낮으며, 지지하지 않는 이유의 38%가 아베 총리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하고 있고, 아베의 총리 연임에 대한 지지가 34%, 반대가 51%로 나왔다. 따라서 아베 총리는 개헌 등에 조심스러운 행보를 취하고 있는 한편 선거 공약인 북핵 위협이란 국난 돌파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결코 한국에 나쁜 상황은 아니다.

문제는 한·일 간 신뢰 관계다. 아베 정권의 역사수정주의,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둘러싼 대립으로 양국 관계는 국교 정상화 이래 최악의 상태로 전락했고,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를 둘러싼 지속적 논란으로 관계 회복이 어렵다.

따라서 대일정책의 출발점은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투 트랙 외교, 즉 대북 공조, 안보 협력, 경제 협력, 사회·문화 교류 등을 역사 문제와 분리해 각자 영역의 논리에 맞게 대응해 나가는 것이다. 트럼프 순방을 맞이해 한국 정부는 한·미·일 협력의 틀 속에서 북핵 저지와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된다면 일본과 당당하게 군사 협력을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대북 군사 정보 공유, 억지력 강화, 확장억지 신뢰성 제고, 미사일 방어 등에서 적극 협력을 미룰 이유가 없다.

일본이 전쟁 가능한 국가가 되었다거나, 군국주의화를 위한 개헌의 야욕이 실현될 것이라는 반일 정서를 자극하는 논리에 흔들려 협력에 주저하면 결국 한·미·일 협력의 뒷전으로 밀리고, 미·일이 원하는 지역동맹적 시도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역사 문제는 그 자체 논리에 근거해 분리 대응해야 한다. 당면한 위안부 합의 문제 처리는 국제 정세 상황 논리나 국내 여론의 정서적 반응에 휩쓸리지 말고 인류 보편 가치에 기반한 논리적 대응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 뒤에는 아베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여론의 향배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화끈하게 협력해 줄 것은 해주고 요구할 것은 요구할 때 아베 총리는 한국을 다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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