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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겁의 세월이 만든 자연의 창작물

신현식 기자의 대륙 탐방

아치스 국립공원 (Arches National Park)

4월의 유타주 모압은 심한 모래바람이 불었다. 게다가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전국 규모의 4륜 구동 차량 랠리로 모든 숙박시설과 캠프장은 만원이었고 조그만 도심은 교통체증에 시달렸다. 평소에 100달러를 받던 모텔은 300달러로 가격을 올렸다.

캐년랜드 국립공원과 아치스 국립공원에 가기 전에 들르는 모압은 봄철 행락객과 전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델리케이트 아치와 2000개가 넘는 독특한 사암 아치 등 볼거리가 많은 아치스 국립공원은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다저스 구장 같이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여러 번 찾았던 지역이라 방심하고 온 것을 후회했다.

모압 시내 캠프장과 모텔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소문하다 몇 마일 떨어져 있는 기차길 옆 오두막 같은 캠프장을 찾았다. 프리웨이 바로 옆에 위치해서 소음이 심한 캠프장이었다. 그나마 이곳도 만원이었고 주인과 타협해 전기와 물을 연결할 수 없는 주차장 한 쪽에 머무르게 됐다. 국립공원 캠프장 가격의 3배를 냈다.



3일간 캠프장 주차장에서 드라이 캠핑을 하며 아치스 국립공원의 이곳저곳을 인파에 휩쓸려 돌아봤다. 여느 관광지가 그렇듯 모압의 식당들은 비싸면서도 변변치 않았다. 전세계의 관광객들로 붐비는 모압 시내의 조그만 마켓에서 장을 보고 캠프장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여행객들의 차려입은 행색이나 말투로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프랑스인, 독일인. 인도인, 일본인이 많았고 단체관광객은 역시 중국인이 많았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보였는데 마켓 주차장 한가운데서 통닭을 안주 삼아 한국산 소주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안하무인격의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을 비판하다가 황당한 한국관광객의 모습을 보자 낯이 뜨거웠다.

몇십 년전만 해도 우리는 결핍 속에서 살았다. 60년대 말까지도 서울 한복판 주민센터에는 미국의 원조물자인 배급 밀가루와 분유를 타려고 긴 줄을 서고 학교에서는 옥수수 빵을 급식으로 줬다. 식당을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 상류층이었을 것이다.

그시절 최고의 호사는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는 것이었다. 먹는 즐거움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먹고 허리를 졸라 허기를 참고 일하던 시절이었다. 한국경제가 발전해 살림살이가 좋아지고 공산품과 농산물 생산이 넘쳐나자 소비가 미덕인 시대가 되었다.

물질 만능 소비지상주의가 확산됐고 먹는 것이 행복의 조건인양 한국인들은 먹는 것에 열광하고 먹방이 대유행이다. 한국사회의 불확실성에 의한 초조함과 불안함을 먹는 것으로 해소하려는 사회적 심리도 있을 것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만 외국의 관광지 마켓 주차장 한가운데서의 술판은 너무했다. 여행은 반복되는 일상과 친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아치스 국립공원은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으며 형성된 붉은색 기암 절벽이다. 어느 예술가도 흉내 낼 수 없는 경이로운 자연의 창작물을 감상하고 대지의 기운을 받고 생소한 지역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경험하고 가슴으로 행복을 느끼자. 아치스 국립공원에 와서 무엇을 먹었느니 맛이 어떻느니 소셜미디어에 포스팅 하지 말자.

4월의 모압은 아름답지만 잔인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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