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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힐스 한의원 류후기 원장, 행복은 나눌수록 더 커진다

북경중의대 졸업 후 도미
밸리·리버사이드서 개원
유학생·형편 힘든 환자
무료진료, 약도 나눠줘
라티노 사회서 의료봉사,
아들과 해피빌리지 활동도
"가진 재주 다 쓰고 가고파
나눔통해 진정한 행복 배워"


행복하게 산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무한경쟁, 그 속도전 속 밥벌이의 고단함과 불투명한 미래가 켜켜이 쌓여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21세기 현대인들에게 행복은 무지개 저편 어디쯤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지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언젠가 그 무지개 너머 파랑새를 찾으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부지런히 그 무지개를 향해 걷는다. 그러나 그 행복으로 가는 문의 열쇠를 이미 손에 쥔 이들은 말한다. 파랑새는 무지개 너머가 아닌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다고. 힐스 한의원 류후기(53) 원장 역시 그러했다. 유쾌하고 청년 같은 삶을 사는 그를 만나 그 행복의 비밀을 엿봤다.

#늦깎이 한의대생

안동 출생인 그는 대학 재학 중 군복무를 마치고 부친의 사업을 돕다 우연한 계기로 한의대에 진학하게 됐다.

"친한 선배가 한의사였는데 저보고 한의사가 적성에 딱이라며 한의학을 공부해 보면 어떻겠냐 하더라고요. 당시 저는 부친 사업과 관련해 러시아 유학을 준비 중이었는데 러시아내 정치적 상황으로 유학이 무산되면서 중국어 공부를 시작해 1년 뒤 중국 유학길에 올랐죠."

1994년 북경 중의대에 입학한 이 늦깎이 유학생의 한의대 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언어적 한계와 어마어마한 공부 량을 쫓아가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1년 만에 몸무게가 10kg나 빠졌을 정도니까요. 게다가 졸업 때까지 위장염을 달고 살았어요. 덕분에 졸업 무렵엔 위장병에 있어선 전문가가 됐지만요.(웃음)"

하루 8~10시간이 넘는 수업과 주말에도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는 '빡센' 강행군 끝 그는 2001년 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석사과정을 시작하면서 중의대 병원에서 근무했다.

"대학병원 근무 때 참 행복했어요. 당시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살면서 언어가 안 통하는 한인들을 진료해 주고 병원 통역도 해줄 수 있어 한의사가 된 보람이 있었죠."

그러다 2003년 세계를 공포에 빠뜨린 사스가 발생하면서 병원 당국은 외국인 의료진들에게 귀국 명령을 내렸다.

"원래 석사과정 마치고 한의대 재학시절 친해진 일본인 내과의 제안으로 일본에서 양한방 병원을 함께 개원할 예정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한국으로 귀국하게 돼 쉬는 동안 미국에 오게 됐죠."

#유학생들을 돕다

2004년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LA에 온 그는 사우스베일로 한의과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이듬해 가주 한의사 자격증을 따 LA한인타운에 '류 한의원'을 오픈했다.

"이왕 시작한 공부, 면허는 따자 싶어 있다 보니 아이들도 이곳 생활에 적응하게 되면서 결국 여기에 터를 잡게 됐죠. 그리고 당시 주류사회에서 한방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던 차라 블루오션을 개척할 수 있겠다는 비전도 생겨 귀국을 접고 개원하게 됐습니다."

특별한 홍보도 없이 주로 입소문을 듣고 온 환자들을 진료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캘스테이트 노스리지(CSUN) 인근에 힐스 한의원(Hills Acupuncture Clinic)을 오픈하면서부터. 당시 환자들 중엔 지역 특성상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았는데 그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무료 진료는 물론 무료로 한약도 나눠주면서 유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났죠. 남의 나라에서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인데 아프기까지 하면 더 서럽잖아요. 특히 저처럼 스트레스성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학생들은 더 안쓰러워 모른 척 할 수가 없었어요. 저 역시 유학시절 위장병으로 고생해 그 고통을 너무 잘 아니까요."

또 보험도, 돈도 없는 환자들이 전문의 진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친구 의사들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진료를 부탁하기도 했다. 돈 되는 일도,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참 오지랖(?)도 넓다했더니 그가 웃는다.

"오히려 환자들에게 받은 마음이 훨씬 커요. 유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이야기를 듣고 제게 갖다 주라며 한국에서 들기름 한 병을 보내신 적도 있고 양말까지 싸서 보내기도 하니까요.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하죠."

이후 그의 환자였던 한인 교수가 UC리버사이드로 자리를 옮기며 그에게 인근 한인들의 왕진을 부탁해 리버사이드를 오가다 2013년 아예 UC리버사이드 인근에도 분원을 오픈했다. 그래서 그는 2년 전까지 총 3곳의 한의원을 운영하다 지금은 한인타운을 제외한 두 곳만 운영 중이다.

#봉사는 행복의 원천

이처럼 LA와 리버사이드, 밸리를 오가는 분주한 스케줄 중에도 그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2007년부터 출석 교회 의료봉사팀 팀장을 맡아 수년간 교인들을 진료한 걸 시작으로 3년 전부터는 라티노 커뮤니티 비영리단체인 WCLO와 인연이 닿아 사우스LA에서 격주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또 이 단체가 LA다운타운에서 개최하는 헬스엑스포 및 라티노 커뮤니티의 또 다른 봉사단체가 주관하는 저소득층에 음식 나눠주기 행사도 빼놓지 않고 참가하고 있다.

"어차피 제 직업 자체가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이니까요. 갖고 있는 재주는 다 쓰고 살다 가려고요.(웃음) 그리고 환자를 진료하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순간만큼 행복할 때가 없으니 제가 받은 행복이 훨씬 더 큰 셈이죠."

또 그는 2015년 당시 8학년이던 아들이 시작한 중앙일보 산하 비영리봉사단체인 해피빌리지의 각종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처음엔 아들 라이드를 해주려 간 것이었는데 간 김에 조금씩 일을 돕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웃음)"

그래서 그는 2년 넘게 아들과 함께 LA인근 공원 청소부터 글렌데일 소녀상 청소, 사랑의 마라톤 지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가하면 그는 재미대한산악연맹의 의료봉사팀에서도 활동 중이다.

"등산 사고는 주로 암벽등반 시에 발생하기 때문에 지난해 아예 등산학교 암벽등반 코스를 수료했어요. 그래야만 일반 등산뿐만 아니라 암벽등반 때도 동행할 수 있으니까요. 뭐 봉사라기보다는 저 좋아 하는 일이죠.(웃음)"

그러면서 그는 은퇴 후엔 보다 더 본격적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했다.

"현재 아내도 한의학 공부 중입니다.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은퇴 후 아내와 함께 의료봉사를 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순간 그의 얼굴에 소년 같은 미소가 번진다. 생각만 해도 좋은가 보다. 그 미소 속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걸 본 듯도 싶었다.


이주현 객원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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