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현의 시가 있는 벤치] 손이 하는 말
손이 하는 말임창현
말 없는 말
소리 없는 말
혀 있어도
손으로 하는 말
수화(手話),
다투려거든
혀 말아서 감아두고
모두,
우리 모두
손으로 이야기 하자
나무처럼
꽃처럼
강처럼
별처럼
손 말은 수화(手話)다. 혀가 일을 하지 않으니 손과 손가락으로 말을 하는 일이다. 어찌 보면 비극이다. 그러나 이 비극이 한 치 혀로 세상을 들쑤시는 희극보다는 아름다운 비극이다. 한 치 혀가 더 무서운 칼이다. 비극의 뿌리다.
인간에게 주어진 구규(九竅) 중 가장 조심해야 할 구멍, 그 첫 번째 구멍인지도 모른다. 나무의 말처럼, 꽃들의 말처럼, 바위들의 말처럼, 우리도 모두 손으로, 얼굴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수화에도 욕이 있고, 분노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소리가 없으니 비다혈(非 多血) 아닌가. 무성(無聲)의 조용한 품위 아닌가.
수화는 시적(詩的)이다. 수화를 같이 배워 소리를 질러야 할 때, 격노할 때, 비참한 격조로 음성이 올라가야 할 때, 그때는 수화로 했으면 좋겠다. 별처럼.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듯, 발음은 은이요 수화는 금이다. 드라마 속 수화도 좋더라.
그들의 눈과 손, 그것은 엄숙한 종교를 향한 눈 같다. 어쩌면 표현의 종교다. 때로 차라리 수화하는 사람이 부럽다. 그들은 그만큼 따뜻하게 보인다. 목회자가 말씀을 마치고 감은 눈으로 두 손 들고 이르는 축도의 순간, 그것은 하나님께 손으로 드리는 고백이요 기원이요 말씀이다. 손 말, 손은 몸의 시다.
임창현/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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