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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트럼프의 오락가락 화법, 생각보다 훨씬 위험

그레그 와이너/어섬션대학 정치학 교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타성에 젖은 워싱턴 행정부와 의회를 '늪'이라 부르며 깡그리 바꾸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러나 집권 뒤 그는 미국의 헌법을 지탱해온 관습을 뒤엎으며 헌법을 무력화하고 있다.

대통령은 신중하고 위엄 있게 말해야 한다. 사면권을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법원의 독립성도 존중해야 한다. 또 정치적 합리성의 범위 안에서 최대한 정직해야 한다. 이는 모두 관습이지 법이 아니다. 법은 관습을 집행할 힘이 없지만 관습 없이는 법이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런데 트럼프가 관습을 멋대로 뒤집어도 법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답답하다. 대통령이 상원 외교위원장을 조롱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을 "가짜 뉴스의 산실"이라 욕하며, 테러리스트를 '찌질이(loser)'라 표현해도 법이 그를 압박할 수 없다.

트럼프의 이런 '내 맘대로' 식 발언들은 역대 대통령이 지켜온 관습을 심하게 위반한다. 가령 트럼프는 의료보험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대통령령을 발포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헌법상 이런 정책은 법률로만 가능하다. 또 그가 북한을 상대로 트위터에 반복해 올린 위협은 너무 모호해 미국의 대북 레드라인을 오히려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의 남용은 위법이 아니다. 관습적으로 부적절할 뿐이다.

트럼프의 충동적, 자기파괴적 성정은 극에 달했다. 4대 대통령 매디슨으로부터 지혜를 얻어야 하는 까닭이다. 매디슨은 헌법의 요체가 단순히 성문화된 조문에 있지 않고 "시간이 부여하는 위엄"에 있다고 했다. 헌법 존중의 전통이 굳건히 유지될 때만 헌법은 강해질 수 있다는 거다.

관습의 힘을 가장 잘 설명한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의 가르침에도 트럼프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버크는 "자신보다 뛰어난 지혜를 경험하지 못한 자의 오만" 대신 "정의의 원칙과 인간사의 다양성이 결합된 집단 이성"을 선호했다. 버크는 근대 보수주의의 창시자다. 부동산 사업가에서 돌연 보수주의에 합류한 트럼프는 관습을 혐오한다. 그래서 트럼프에게 뭔가를 하도록 유도하려면 "그건 관습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일러줘야 잘 먹힌다. 그의 주변 참모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트럼프의 충동적 트윗질과 검찰 독립성 방해, 전쟁과 평화를 입에 달고 다니는 습성, 선동적 유세는 미국을 지탱해온 관습과 모두 거리가 멀다.

트럼프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워싱턴의 잘못된 관습을 뒤집어 미국을 구원하겠다고 호언한다. 다른 대통령들은 관습을 방패로 여겼지만 트럼프는 족쇄로 여긴다. 트럼프의 열성 지지층이 같은 생각이다보니 그는 시간만 나면 관습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 그래야 워싱턴의 '적폐' 기성 정치인들을 누르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역사적으로 보수주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해왔다. 그러려면 관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 모두가 친구일 때엔 정의를 외칠 필요성이 없다"고 했다. 정의에 관한 규칙은 사회를 지탱해온 메커니즘이 작동을 멈출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헌법을 공개 비판한 대표적 대통령은 우드로 윌슨이다. 그 이후 진보적인 법학자들은 "헌법은 여러 세대의 동의를 얻아 관습화한 것이라 권위를 지닌다"는 전통적 주장을 부인해 왔다. 역사의 족쇄를 부인하는 자유의지론자들은 현 세대의 이성이 과거 어느 세대의 이성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여기에 사는 이들의 합리성이 과거로부터 이어진 관습적 지혜보다 의미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연일 쏟아내는, 정제되지 않은 말들은 미국이란 공화국의 헌정질서를 크게 훼손한다. 그때그때 상황과 편의에 따라 말이 달라진다면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하루는 전쟁을 얘기하고 하루는 외교를 얘기하면 트럼프 본인이야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아 좋겠지만 외교관과 국제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마련이다. 되풀이하건대 관습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법도 존재할 수 없다. 관습의 힘을 무시하는 트럼프의 오만함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10일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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