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도 고전하는 현대차 … 점유율 8년 만에 최저
SUV 대세인 시장 변화 대응 못해
올해 누적 판매량 10.2% 급감
한·미 FTA 재협상 등 악재 이어져
“코나·제네시스 G70 출시로 만회”
15일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달 미국에서 5만7007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6만6610대)보다 14.4% 판매량이 감소했다. 기아차가 지난해 동기(4만9220대) 대비 6.6% 많은 5만2468대를 판매하는 등 선전했지만, 현대·기아차 전체를 놓고 보면 5.5%가 감소한 수치다. 1~9월까지 누적 판매량도 96만9천670대 지난해 같은 기간 107만9452대보다 10.2%나 줄었다. 판매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 점유율 변화를 살펴보면 하락세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올해 9월까지 누적 판매량을 기준으로 한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7.5%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 8.2%에서 0.7%p 떨어졌다. 이는 2009년 7% 점유율을 기록한 이후 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경쟁사와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점유율 순위는 여전히 7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6위인 혼다와 차이가 지난해 1.2%포인트에서 2.1%포인트로 커졌다.
수치만 놓고 보면 9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41.6%나 줄어든 중국 상황이 미국보다 심각하다. 그러나 업계에선 미국 시장 부진이 오히려 더 뼈아플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드 보복 사태와 같은 외부 악재가 아닌 현대·기아차의 경쟁력 약화가 가장 큰 원인인 데다, 바닥을 치고 조금이나마 반등의 기미가 보이는 중국과 달리 미국 시장은 더 나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에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인기를 끌고 있고, 픽업트럭의 성장세도 견고한 반면 세단은 하락세다. 현대·기아차의 지난달 판매량을 봐도 SUV인 투싼은 지난해 동기 대비 38% 판매가 증가했지만, 주력 세단인 쏘나타는 35.6% 감소했다. 현대·기아차도 소형 SUV 코나와 신형 싼타페·투싼을 차례로 투입할 예정이지만 긴 시간 세단에 집중해 온 만큼 단기간에 시장 변화를 따라 잡기가 버겁다. 픽업트럭 출시는 소문만 무성할 뿐 정확한 출시 계획은 아직도 묘연하다.
때문에 시장 상황이 나아져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총 152만6000대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달 대비 6.3% 증가했다. 그리고 현대·기아차와 달리 도요타와 혼다·닛산·미쓰비시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누적 판매량은 모두 지난해보다 늘어났다. 이런 추세가 더 반복되면 시장 자체가 침체됐다는 핑계도 더 이상 대기가 어려워 진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예전엔 기술이나 트렌드의 주기가 길어 늦게나마 따라가기라도 하면, 즉 ‘패스트 팔로워(Fast-follower)’라도 되면 몇년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장·기술 변화가 이를 따라 잡는 속도보다 더 빠르다. 뒤늦게 SUV나 픽업트럭 라인업을 갖췄을 땐 이미 상황이 달라져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구조적인 문제가 더해질 여지도 있다. 아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 따른 정확한 손익계산을 하기는 어렵지만, 폐기까지 언급되는 상황이 현대·기아차에 달갑지 않은 건 분명하다. 이 교수는 “한·미 간의 자동차 판매는 무역 장벽 같은 제도의 문제 보다는 정서적인 선호 문제가 더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그동안 얘기만 많았지 별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정부는 실제로 부당한 조치를 취하게 될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 판매 모델 중 상당수가 출시된지 오래된 모델인데, 코나와 제네시스 G70 등 신차들이 출시되면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한 FTA 재협상과 관련해선 “상황을 지켜봐야 하지만, 애초에 FTA로 인해 판매가 갑자기 늘어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드 보복처럼 심각한 악재가 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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