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트럼프 시대 1기' 점검해 보니…일방적 '미국 우선주의'에 커지는 한·미 동맹 피로감
FTA 등 현안, 대부분 미국 뜻대로트럼프 '개인적 신념' 절대적 영향
문 대통령도 "주도할 여건 안 돼"
힐 "한국서 美 지도부 신뢰 떨어져"
다음달 정상회담이 분수령 될 듯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달 7~8일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문재인-트럼프 시대 1기'를 마무리하는 이벤트다. 북한 핵.미사일 해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강화, 전시작전권 전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 양국 간 핵심 동맹 현안의 큰 틀이 짜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한.미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격변기이자 시련기였다. 지난 5개월간 양국은 과거 한국 대통령 임기 5년 동안에도 다루기 힘들 정도의 굵직굵직한 동맹 현안에 모두 손을 댔다. 하지만 우리 정부 입장에서 볼 때 협상 결과(표 참조)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문 대통령도 지난 10일 5부 요인 초청 오찬에서 최근 안보 상황에 대해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 7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다녀온 뒤 "우리에게 (현재 위기를)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고 말한 데 이어 공개적으로만 두 번째다.
야당도 문재인 정부 첫 국정감사를 맞아 한.미 동맹 이상 기류를 집중 부각하고 있다. 외교안보라인 개편 요구는 야권은 물론 여권 일각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주요 한.미 동맹 현안에 대한 양국의 기존 입장과 지난 5개월간 논의 결과를 중심으로 문재인-트럼프 시대 1기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한.미 관계의 분수령이 될 11월 정상회담을 조망해 봤다.
북 도발로 축소된 한국 입지
북한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5월 14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발사를 시작으로 모두 10차례 도발을 했다. 지난달 3일엔 6차 핵실험까지 감행했다.
지난 1월 취임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은 원래 '최고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였다. 북한을 최대한 압박해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끌어낸 뒤 통 큰 협상을 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정부도 지난 7월 '신베를린 구상'을 통해 압박과 대화 병행 원칙을 제시했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이 미 본토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이르면서 미국의 대북 접근법은 180도 바뀌었다. '관여'는 사라졌고 사상 최고 수준의 대북 압박으로 급선회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논란 ▶적십자회담과 군사당국회담 제안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지원 결정 등 압박과 대화 병행 원칙에 따른 독자 조치를 취하면서 한.미 관계에 긴장감을 조성한다는 비판을 불렀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당국자는 "과거 보수 정권은 미국과 이해관계가 대부분 일치했거나 설령 다르더라도 미국의 입장을 대부분 수용했다"며 "현 정부는 다른 것은 다른 대로 당당히 협의해 나가겠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달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정부는 "지금은 대화를 말할 때가 아니라 제재와 압박을 해야 할 때"라는 입장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문 대통령도 지난 11일 의원 외교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지금은 미국의 강력한 대북 압박과 제재에 동의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얼마 남지 않은 비핵화라는 기회의 창을 살리기 위해 미.일 양국과 함께 북한을 최대한 압박해야 할 시점에 정부가 출범 초 대화를 서두른 측면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사드 체계 배치와 관련된 정부의 입장 변화도 마찬가지다. 연내 완전 배치라는 박근혜 정부 당시 합의 이행을 요구해온 미국에 대해 정부는 "민주적.절차적 타당성을 확보한 뒤 배치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결국 지난달 발사대 4기를 추가 배치하고 말았다. 정부는 '임시 배치'라고 강변했지만 사실상 '완전 배치'와 다름없었다.
전문가들은 다음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여곡절 끝에 한 배를 탄 양국의 북핵 해법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북한의 입장에 전혀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 11일 러시아 타스통신과의 면담에서 "우리는 미제(미국)와 실질적 힘의 균형을 이루는 최종 목표를 향한 길에서 거의 마지막 지점에 도달했다"며 "미국의 대조선 압살정책이 근원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의 핵무기는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 우선주의'가 일으킨 쓰나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독트린을 선포했다. 그는 "세계의 독립 주권국가들이 각자 다양한 가치와 문화와 꿈을 좇으며 살도록 하겠다"며 "나는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수호할 테니 여러분도 자국의 국익을 추구하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언한 미국 우선주의는 한.미 동맹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장 2011년 미 의회 역사상 가장 많은 찬성표로 가결된 한.미 FTA가 6년 만에 개정될 운명을 맞았다. 한.미 FTA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늘리고 미국인의 일자리를 줄인 최악의 합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신념'이 결정적이었다.
당초 한.미 FTA 개정에 부정적이었던 우리 정부는 미국의 폐기 압박에 밀려 개정 협상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지난 13일 국회 국정감사 답변에서 "미 행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이어 유네스코에서도 탈퇴했다"며 "이런 것을 봤을 때 한.미 FTA 폐기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한.미 FTA가 폐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미국 우선주의' 쓰나미는 이르면 연말에 시작될 제10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에도 들이닥칠 것으로 보인다. 대선 때부터 동맹국의 공정한 분담을 강조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물가인상률 수준의 증액이란 기존 원칙에 연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달 말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와 다음 달 초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입장이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 12일 국정감사에서 "국방예산 지출과 미국 방산물자 구매, 다국적 군사활동 참여 등을 통해 우리 측이 이미 충분한 수준의 안보 분담을 하고 있다는 점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며 "합리적 수준에서 방위비 분담금이 책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노골적인 미국 우선주의는 한.미 동맹 피로감을 점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 12일 MSNBC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이 어른으로서의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발언이 동맹국인 한국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는 점을 들며 "실제로 (한국에서는) 미국의 정치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도 "최근 미측 주요 인사들을 만나면 한.미 동맹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나 정책은 수십 년간 양국이 쌓아온 한.미 동맹 시대의 일부일 뿐'이란 얘기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속도 붙은 '확장억제' 강화
북핵 위협과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맞물리면서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 강화 방안 논의는 역대 어느 정부 때보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지난달 한.미 미사일지침(Missile guideline)을 개정해 한국 탄도미사일의 탄두 중량 제한을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2012년 2년여의 협상 끝에 사거리 800㎞와 탄두 중량 500㎏ 확대에 합의했던 것과 비교할 때 트럼프 행정부가 아니었다면 이 같은 합의가 쉽게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중평이다.
북핵 위협이 커지면서 국내에서 전술핵 재배치와 독자 핵무장론이 나오는 가운데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 강화와 핵추진 잠수함 등 미국 최첨단 무기 구매 및 개발도 탄력을 받고 있다.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 한국은 그동안 상시 배치를 희망했지만 미국은 비용 증가와 해외 미군 주둔의 기본 원칙인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반대해왔다.
그런 가운데 양국은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사실상 상시 배치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자산의 순환 배치 확대에 합의했다. 핵 항공모함 전단과 전략폭격기, 핵추진 잠수함 등 각종 전략자산이 지금보다 더 자주 한반도에 배치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 13일 핵추진 잠수함인 미시간함(SSGN 727.배수량 1만8000여t)이 부산항에 입항했고 16~20일엔 미 해군 7함대 소속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CVN-76)이 참여하는 한.미 연합훈련도 실시된다.
미국 최첨단 무기 구매와 개발 허용에는 양국 정상 간 전화 통화 때마다 미국 무기 구매를 줄기차게 요구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동안 미국은 기술 유출 등을 이유로 첨단 무기의 해외 판매에 소극적이었다. 지난달 정상 간 합의로 조속한 전시작전권 전환을 추진 중인 한국은 미국 첨단 무기 구매를 통해 국방력 강화의 길이 열렸지만 국방예산 증가가 불가피하고 미국 무기에 대한 의존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명암이 엇갈린다.
전시작전권 전환과 관련, 정부는 당초 문 대통령 임기 내 전환을 추진했지만 협의 결과 '조건에 기초한 조속한 전환'에 합의했다. 군 안팎에선 전환 시점을 2023~2024년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조속한 전환을 위해 한국군 사령관과 미군 부사령관의 단일 연합지휘체계를 핵심으로 하는 '미래 연합군사령부' 편성안을 이달 말 열리는 SCM에서 합의한 뒤 한.미 정상회담에서 최종 승인을 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변수는 남아 있다. 최근 미측에서 주한미군이 한국군 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방안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차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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