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삶의 향기] 사생활 침해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대학교 후배들이 방문했다. 식사 중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 후배가 "취미를 묻는 것도 사생활 침해"라는 말을 하자, 몇 친구가 맞장구를 친다.

어린 시절, 출신학교나 아버지 직업 등을 거리낌없이 묻곤 했던 어른들을 교양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었고, 상대의 나이나 결혼여부, 연봉 등은 상대가 이야기하기 전에는 결코 먼저 묻지 않는다.

모처럼 만난 후배들과 일 이야기를 나눌 일은 없으니, 그들과 나눌 수 있는 대화라는 것이, 주로는 학교생활이나, 장래 계획, 아니면 특정한 주제에 대한 그들의 생각들 정도일 텐데, 이러한 내용들은 취미보다 덜 사적인가. 눈치없이 물었다가 개념 없는 선배가 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고 내 이야기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취미를 묻는 것이 사생활 침해라는 말이 금시초문이어서, 2세 고등학생 둘과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지인 친구 둘에게 물어보았다. 한 현지인 친구는 '아름다운 질문(Beautiful question)'이라고 하기도 했고, 2세 학생은 대뜸 "그 후배, 친구 없죠?"라며 되묻기도 했다.

출신학교, 나이, 연봉, 직업을 묻는 것이 왜 불편할까. 내세울 만한 정도가 아니라면, 나를 치장하고 싶은 욕심이 기저에 있는 것은 아닐까. 내세울 만한 정도가 된다면 공개되는 것이 덜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불편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앞의 경우와 많이 다른 것일까.



필자의 대학시절엔 영어공부를 위해 '타임지'를 보는 것이 유행이었다. 어떤 친구는 일부러 표지를 가리고 타임지를 읽기도 했다. 만화책에 타임지 표지를 입혀서 보는 것이나, 타임지 표지를 일부러 가리는 것 모두, 만화책이나 타임지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는 다를 게 없다. 출신학교, 직업, 연봉도 마찬가지이다. 불교적 관점에서는 과시하는 것이나 굳이 감추는 것 모두 '아상(我相ㆍ나에 대한 집착)'에 다름 아니다.

만약, 예수님이나 부처님께 출신학교, 나이, 연봉, 직업을 물었다면, 사생활 침해라면 불쾌해 하셨을까. 있는 그대로 흔연히 대답들 하셨을 것 같다.

불교에서는 아상을 고통의 근본 원인, 깨달음을 가로막는 장애로 여긴다. 현대인들이 그토록 보호하고자 하는 사생활이란 것이 과연 위에서 언급한 아상과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어느 철학자는 산다는 것은 결국 말과 정을 나누는 것이라고 했고, 대종사께서도 법을 건네기 위해서는 먼저 정(情)이 건네야 한다고도 하셨다. 엄밀히 말하면 취미는 사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모임에 처음 나온 사람이 "취미 같은 것은 제게 묻지 마세요" 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대중에게 크게 환영받지는 못할 것 같다. 기회 있을 때마다 목청을 높여왔던 '사생활 보호'는 개인의 사적인 자유나 권리에 대한 보장과 사생활의 악용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개인 신상의 단순한 노출에 대해서는 최대한 너그러워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drongiandy@gmail.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