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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기쁨된다면 그것만으로 가치는 충분"

LA 방문한 정호승 시인 인터뷰

부디 너만이라도 비굴해지지 말기를
강한 바닷바람과 햇볕에 온몸을 맡긴 채
꾸덕꾸덕 말라가는 청춘을 견디기 힘들지라도
오직 너만은 굽실굽실 비굴의 자세를 지니지 않기를

무엇보다도 별을 바라보면서
비굴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기를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인생은 굴비가 아니다
내 너를 굳이 천일염에 정성껏 절인 까닭을 알겠느냐
-굴비에게 (정호승)-  



정제된 서정으로 사랑과 외로움을 따뜻하게 노래한 정호승(사진) 시인이 LA를 찾았다. 지난 7일 LA한국문화원 초청으로 열린 '노래가 있는 시 낭독회'를 위해서다.

'노래가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이번 행사에서 낭독하는 시들 중 8편이 바로 노래가 된 시들이기 때문이다.

정씨는 "세상에는 노래가 된 시들이 많다. 내 시 중에서도 70여 편에 가까운 시들이 노래가 됐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노래가 됐던 이동원의 '이별노래'를 비롯해 김광석의 '부치지 못한 편지' 안치환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와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는다' 양희은의 '수선화' 등 셀 수 없이 많다.

정호승의 시가 노래가 되어 대중들의 마음을 깊게 파고드는 데는 그의 시가 때론 아픈 곳을 이야기하지만 다독이며 어루만져 주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정 시인에게 그의 시와 노래가 된 시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독 노래가 되는 시가 많은 것 같다. 이유가 있을까.

"비교적 많은 시가 노래가 된 편에 속한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시를 쓸 때 멜로디를 생각하며 쓰는 것도 아닌데 작곡가들이 시속에서 멜로디를 끄집어 내 준다. 이동원의 '이별의 노래'가 30년 전 처음 노래가 된 시인데 아주 아름다운 노래가 되었다."

-김광석의 '부치지 못한 편지'가 대중들에게 많이 불린다. 혹시 누구를 생각하면서 쓴 신가.

"그 시를 쓸 때가 1980년대 후반이었다. 박종철 열사를 생각하면서 썼다. 하지만 누구를 생각하며 썼는지는 중요치 않다. 시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노무현 대통령이나 시대적 인물의 죽음을 기리거나 보낼 때 많이 불리게 된 것 같다."

-최근 발표된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표제 시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는 정말 희망을 거절하는 게 아니다. 시는 반어와 역설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많다. 풀어본다면 '나는 희망을 간절히 소망한다'는 의미다. 살아가면서 보면 희망이 없는 희망에 너무 희망을 걸고 살지 않나 싶다. 그래서 요즘은 '희망 고문'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런 말이 이 시대에 왜 생겼을까. 희망이 없는 희망을 가지기 때문이다. 진정한 희망이 있는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절망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희망의 뿌리는 결국은 절망에 뿌리를 내린다. 그래야 희망이라는 나무가 클 수 있는 거다. 결국은 절망이 희망을 만드는 거지 희망이 희망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희망만 있는 희망을 거절한다는 뜻이다."

-'굴비에게'라는 시도 좋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생각하면서 쓴 시다. 조기가 굴비가 되기 위해서는 소금에 절여져야 한다.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하지만 그 과정이 없으면 굴비가 될 수 없다. 이 시대의 고통 속에 있는 청년 세대도 천일염이라는 고통을 거칠 수밖에 없다.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현실적인 자기 삶의 문제점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혹시 이민자를 위해 쓴 시도 있나.

"30.40대 이민자를 위한 시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옛날이다. 이민자들에게는 '바닥에 대하여'라는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모국을 떠나 사시는 분들 중에는 내 삶이 바닥에 떨어졌구나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열심히 일을 해도 뜻대로 잘 되지 않으면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닥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바닥의 가치가 없으면 반대의 개념인 정상의 가치는 형성되지 않는다. 바닥의 가치를 원망하고 부정하지 말고 바닥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긍정해야 한다. 집을 지을 때도 땅을 깊게 파지 않나. 얼마만큼 깊게 파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집이 어느 정도 높게 올라가느냐가 결정된다. 바닥이 얕다면 인생이라는 집도 단층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바닥에 굴러 떨어졌는데 바닥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바닥이 있어야 나를 받쳐준다. 우리는 그 바닥을 딛고 일어서기만 하면 된다. 바닥은 왜 존재하는가. 딛고 일어서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시인이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생각은.

"난 산문집도 있고 심지어 동화책도 냈다. 음식을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설렁탕이나 갈비탕을 먹는데 간장 종지에 먹을 수는 없지 않나. 반대로 간장을 설렁탕 그릇에 담을 수는 없다. 음식에 따라 맞는 그릇이 필요하듯이 글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느 장르에 담는 것이 적합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시는 쓰이는 것인가 아니면 노력에 의한 것인가.

"시를 쓰는 일은 노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보통 한편의 초고를 30~40번 정도 고쳐쓴다. 초고를 쓰고 자꾸 소리 내서 읽어본다. 입 속에서 말들이 부딪히는 지도 본다. 그렇게 고치고도 한 달 뒤에 보면 또 고칠 부분이 생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없다. 아무리 마음속에 시상이 주워져도 안 쓰면 그만인 거다. 내 가슴속에 있는 시는 시가 아니다. 언어로 나와야 시가 되는 거다. 시를 쓰는 것 자체가 노력이다."

-시를 사랑하는 문인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문학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 인간을 인간의 삶을 인간의 영혼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미주 한인들도 시를 쓰면서 삶에 기쁨이 있기를 바란다. 그런 기쁨이 있다면 쓸 가치는 충분하다."


오수연 기자 oh.sooyeon@koreadaily.com oh.sooyeo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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