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칼럼] 허리케인 이후 미국경제는?
이홍직 / 뉴욕사무소 차장
연이은 대형 허리케인으로 인한 사망자가 160명을 넘어선다는 소식이 들리고,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에 따르면 재산손실 규모가 약 12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침체에서 벗어나 순항하던 미국경제가 허리케인이라는 복병을 만나 다시 후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경기가 좋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보유채권 축소와 금리 인상을 통해 돈줄을 죄려는 연준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과연 순항하던 미국경제가 정말 허리케인으로 휘청거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허리케인이 미국경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위해서는 과거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 유용하다. 지금까지 대규모 허리케인이 상륙했을 때 미국경제의 움직임을 분석해 보면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카트리나(Katrina), 샌디(Sandy) 등 대형 허리케인이 온 직후에는 미국경제가 생산, 소비, 고용, 물가 등 경제전반에 걸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피해지역 내 공장 설비가 훼손돼 생산이 줄었고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소비도 위축됐다. 생산과 유통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물품 및 서비스 공급이 줄면서 물가가 올랐고 영업에 차질이 생긴 공장과 상점의 일부 근로자들은 실업으로 내몰렸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하비가 상륙한 8월 생산이 석유류 부문을 중심으로 전월보다 0.9% 줄었고 석유류 물가는 뛰었다. 텍사스 걸프 연안의 정유설비가 미국 내에서 20~30%나 되는데 이번 하비로 인해 석유화학제품 생산설비의 절반 정도가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텍사스 등 허리케인 피해지역에서 실업자가 크게 늘면서 매주 24만 명 정도이던 신규실업수당 청구권자수가 8월 마지막 주부터는 27만 명 정도로 많아졌다. 9월 생산, 고용, 주택, 물가지표에는 하비뿐만 아니라 어마의 영향까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도 허리케인이 미국경제에 적지 않은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허리케인의 영향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이후의 모습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허리케인 직후 위축되었던 미국경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를 상쇄시킬 정도로 빠르게 살아났다.
피해지역에 정부의 복구자금이 투입됐고 훼손된 공장시설과 건물이 재건되면서 생산과 투자가 늘어났으며, 올라갔던 물가는 다시 안정됐고 직원들은 종전의 일자리로 돌아왔다.
이처럼 허리케인으로 흔들린 경제가 제자리를 되찾기까지 부문별로 적게는 2개월(신규실업수당 청구권자수), 많게는 2~3분기(GDP)의 시간이 소요되곤 했다. 사람이 인생을 살다가 큰 위기에 부닥쳤을 때 잠시 낙담하다가도 이내 다시 일어서는 것처럼, 경제도 자연재해를 만났을 때 잠재돼 있던 복원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단기 효과를 모두 고려해 볼 때 허리케인의 충격이 상당기간 지속되면서 순항하던 미국경제가 궤도에서 이탈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과열 예방을 위해 점차 돈줄을 죄겠다는 연준의 계획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얘기다.
앞으로 수개월간 허리케인 때문에 경제지표가 적지 않게 널뛸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럴 때일수록 시시각각 나오는 지표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긴 호흡을 가지고 경제지표의 추세를 짚는데 힘을 쏟는 자세가 요구된다. 잘못된 경기전망에 근거해 소비 및 투자 결정을 내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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