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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좋은 술, 저렴하게 즐기세요"

창간 특집 '성공 스토리' (2) '소주 한류'의 원조 당갑증 대선아메리카 사장

"한국인들은 신비한 마법의 초록색 병에 든 걸 먹으면 비밀을 막 털어놓는다."

소설가 김영하가 전주국제영화제에 참가한 외국인 심사위원들이 한 말이라며 인기 버라이어티 쇼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 공개한 일화다. 이 '신비한 마법의 초록색 병에 든 것'은 바로 소주, 우리가 일상에서 즐겨 마시는 소주의 신비한 효과(?)를 외국인들은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그렇다면 이건 또 어떤가. 가수 싸이가 "오빤 강남 스타일"을 부르짖으며 "난 소주파"라고 외칠 때, 유튜브를 타고 '소주'의 위력이 전 세계로 전파될 때, 싸이는 확실히 '소주 한류'의 일등공신일 터. 그러나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날아가는 소주는 '그림'일 뿐, 그 소주를 외국인들이 직접 마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소주 한류' 원조는 누구



결국 누군가 소주를 전 세계로 실어 옮기고 팔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가 누구일까.

당갑증(70). 1986년 진로 소주를 뉴욕 등 미 동부 지역에 처음으로 들여와 판매하기 시작한 대선아메리카(옛 탕스리커) 사장. 퀸즈 매스페스의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차분한 표정, 수줍은 미소,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이웃집 아저씨였다.

미수복 지구인 강원도 김화 태생으로 위로 누나 셋, 아래로 남동생 셋인 7남매의 장남. 네 살 되던 해 온 가족이 충북 괴산으로 피란해 살다가 인천으로 이주. 태권도 사범인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막내누나의 초청으로 7남매 모두 미국에서 살게 됐다고.

1977년 도미, 필라델피아에 정착해 작은 수퍼마켓을 운영하던 그는 86년 우연한 기회에 친구를 통해 진로소주 미동부 판권을 매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류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주류 도매 면허를 받은 그는 필라델피아 집과 플러싱을 오가며 회사를 꾸려 나갔다. 한인 밀집 지역인 플러싱 일대 식당과 리커스토어를 직접 누비며 판매망을 확장했다. 이때 162가에 있는 리커스토어(Leiser's Wines & Liquors)에 납품하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최대 고객사의 하나로 소주 한 품목만 일주일에 150박스 이상 판다.

-뉴욕에서 소주를 처음 팔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전에는 소주가 없었나.

"그럼. 내가 뉴욕에 진로 갖다 팔기 전에는 소주가 없었던 셈이지. 여기 사는 사람들 고향 생각에 소주 한 잔 하고 싶어도 한국서 올 때 들고 온 것 아니면 없는 셈이지. 그러니까 내가 뉴욕에, 아니 미국 전역에 소주를 유통시킨 장본인이야."

-초창기 에피소드를 들려준다면.

"진로 소주 처음 팔 때 본사에서 광고 포스터나 판촉물 이런 거 지원이 하나도 없었어요. 업소에서 달라고 하면 내가 포스터 만들어서 갖다 주고 그랬어. 추가 비용이 드니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았지. 한인 상권이 크지 않으니까 매출도 많지 않았고. 소주 갖고만 힘들기에 경주법주를 들여와 맨해튼과 플러싱의 룸살롱에 납품했는데 업소에 직접 팔고 수금하는 게 힘들어 결국 포기했지."

진로 소주 총판이라고 해서 돈이 그냥 굴러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수익 구조를 개선하게 된 건 뉴욕의 주(酒)법을 알게 되면서였다.

"2~3년 소주를 수입해서 판매하다 보니 알게 된 건데, 뉴욕주에서는 주세가 알코올 도수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나는 거야. 처음에는 몰랐지. 그때 들여와 팔던 소주가 25도였는데, 이게 하드리커로 분류돼서 지금 기준으로 치면 리터당 세금이 무려 1.7%나 붙거든. 그런데 1도 낮춰 24도로 하면 0.67%니까 세금이 거의 안 붙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소주 도수를 낮춰서 세금이 내려가면 박스당 9불 이상 더 남는다는 계산이 나오자 그는 서울로 가서 직접 진로의 사장을 만났다. 기술적인 면에서 볼 때 도수를 낮추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부 25도로 생산되는 소주 가운데 뉴욕으로 보낼 24도짜리만 별도의 탱크에 보관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고 해외영업부에서도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는 출고가에 2달러를 더 얹어 주어 이 문제를 단박에 해결했다.

"9달러에서 2달러를 떼어 주더라도 7달러가 남잖아. 그렇게 해서 뉴욕으로 오는 소주만 24도짜리가 되었지. 그런데 이게 웬떡! 24도짜리 소주가 불티나게 팔리는 거야. 뉴욕에서 잘 팔리니까 서울 본사에서 뉴욕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나가는 소주를 전부 다 24도로 바꿔 버렸어."

따지고 보면 주정에 물을 섞어 만드는 희석식 소주는 도수를 낮추면 생산원가를 낮추는 효과도 있었다고.

"내가 진로에 도움을 좀 준 셈이 되었지."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

이와 함께 1990년대 초부터 플러싱을 중심으로 한인 상권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사업은 더 좋아졌고 96년에는 백세주도 들여와 점입가경. 이때가 최고였다. 탕스리커는 절대적인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고 1년에 40만~50만 달러씩 세금보고를 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그런데 99년께 한국의 진로 본사가 경영 위기를 겪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2001년 기준 소주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던 진로의 '참이슬' 판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것.

-잘하고 있는데 왜 계약을 해지했나.

"내 사업이야 잘 됐지. 그런데 99년부터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데 자꾸 미루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1년만 연장해 주겠다고 하고, 이상한 낌새를 보이는 거야. 자세한 건 아직도 모르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할 사정이 있었겠지."

그러던 차에 독립기념일 연휴에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통관업체에서 "새로 들어온 소주를 다른 곳에 입고시킨다"는 전화를 받았고 이것으로 진로 총판과는 이별을 했다. 효자 상품이던 진로 참이슬 판권을 순식간에 잃고 고전하던 그때, 소주에 백세주를 섞어 마시는 '오십세주' 바람이 불면서 백세주 판매가 크게 늘었다. 그는 백세주로 재기를 노리면서 참소주를 들여와 새로 출시했다.

-참소주를 들여오게 된 계기는.

"이전에 경주법주를 취급하면서 인연을 맺었는데, 진로를 못하게 됐으니까 자매 브랜드인 참소주를 달라고 했어. 미국 시장에서 광고나 프로모션 같은 건 내가 전부 다 할테니까 본사가 손해 보지 않을 정도로만 공급해 주면 열심히 해 보겠다고 했지. 보통 한국 주류업체들은 판촉을 해 주는 대신 출고가를 올리는데, 나는 그걸 다 빼고 원가 수준에서 달라고 한 거야. 바로 이것 때문에 타 업체는 우리 참소주 가격을 따라올 수가 없는 거지. 게다가 나는 포트폴리오를 잘했거든. 이동막걸리, 마음의 궁, 지리산 복분자 등 다양한 제품을 취급했지."

-위기 때 발빠르게 대처한 게 효과를 본 셈이네요.

"우리 회사에서 물건을 받으면 식당에서 필요한 술 다 있고, 리커스토어에서 팔 술 종류별로 다 있거든. 그런데 다른 업체에서 물건 받으면 한두 종류뿐이란 말이지. 결국 우리 회사에서 다른 술을 받아야 돼. 그래서 플러싱 일대는 우리 회사가 꽉 잡고 있지."

당 사장의 대선아메리카는 중국 고량주부터 한국의 백세주.생막걸리.참소주 등 다양한 종류의 술을 취급하고 있다. 때문에 식당이나 리커스토어 등 거래선들도 선호하고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에도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뉴욕에 부는 '소주 한류'

최근 들어 뉴욕 일원에서는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이 점점 다양해지면서 '소주 한류'가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당 사장이 진로를 들여와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면 이제는 여러 수입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다양한 품목을 들여와 한국과 동시에 즐길 수 있게 된 것. 또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은 한국에서 한국식 소주 제조법을 배운 미국인이 브루클린에 공장을 차려놓고 생산 판매하는 '토끼 소주'와 업스테이트 뉴욕에서 생산하는 한국식 '여보 소주'도 나오는 등 그야말로 '소주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인터뷰 도중 당 사장은 창고에서 꺼내온 프리미엄 소주 '화랑'을 소개했다. 화랑은 경주법주와 같은 유형의 술로 고가인 경주법주를 대중화하기 위해 저렴한 가격대에 내놓은 것.

"이게 참 좋은 술인데, 싸게 만든다고 했는데도 한국에서는 비싸거든. 근데 이게 여기서는 싸요. 왜냐, 이걸 와인으로 등록해서 들여오거든. 화랑은 제조 과정이 일반 소주랑 달리 와인 제조 방법과 비슷해서 그렇게 등록했는데, 세금이 아주 낮게 나와서 싸게 팔 수 있게 된 거지. 내가 술 장사를 하지만 무작정 이윤 많이 남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이 좋은 술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하죠."

-이달에 증류주인 '제왕(帝王)'을 출시하는데.

"한국 고유의 안동소주 제조법에 따라 만든 증류주인데 한국에서는 21도와 25도짜리 두 종류가 있어요. 그런데 21도짜리는 일반 소주 병에 넣어서 파니까 품격이 떨어져. 안동소주라면 정말 귀한 술인데 말이지. 게다가 안동소주는 독해야 제맛이 나는데 가격 때문에 21도로 나오는 것도 좀 그렇고. 그래서 우리는 24도로 해 달라고 했어. 안동소주 맛을 제대로 내면서 세금을 줄이는 방법으로 24도를 선택한 거지."

-뉴욕주의 별칭이 '엠파이어 스테이트'이니 뉴요커들에게 딱 맞는 술인 셈이네요.

"듣고 보니 그렇군. 제왕도 큰 부담 안 되는 가격대에 내놓을 예정이니 많이 즐기시면 좋겠어."

-맨해튼에서 참소주가 약하다고 했는데.

"우리는 참소주가 주력 제품이고 화랑과 제왕 같은 프리미엄 소주는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우리가 플러싱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아주 높은데 맨해튼에서는 별로거든. 우리가 맨해튼 판촉을 별로 안 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거긴 젊은이들이 많고 소주 값을 비싸게 받아요. 그런데 우리 참소주는 플러싱에서는 한 병에 8.99달러 이렇거든. 이걸 맨해튼이라고 비싸게 받으면 주인이 욕을 먹고. 다른 데서는 싸게 파는데 이 집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다른 소주는 비싸게 팔아도 그려러니 하는데 참소주는 욕을 먹으니… 거 참."

-화랑이나 제왕 같은 프리미엄 소주로 공략하면 되지 않나.

"우리가 식당에 직접 넣기는 힘들어. 업소용 냉장고가 별로 크지 않은데 여러 종류의 술을 다 갖춰 놓기가 사실 힘들거든. 그래서 화랑 같은 건 손님이 찾으면 식당 직원이 리커스토어에 가서 사오는 경우가 많아."

일흔에도 당당한 '현역'

-10년 전 인터뷰 때 조만간 은퇴한다고 했는데.

"내가 법적으로 이미 은퇴한 나이이지만 아직까지 일을 하고 있는데, 주류 도매업이라는 게 사업을 물려주기가 쉽지 않아. 수입부터 유통까지 다 하기 때문에 연방정부부터 주정부, 로컬정부까지 라이선스를 전부 다시 내야 해서. 내년에는 큰아들이 합류하기로 했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대학에서 컴퓨터사이언스를 전공하고 IT 업체에서 20년 가까이 다닌 큰아들 현덕(43)씨는 그동안 근무하던 회사가 내년 플로리다로 이전하는 바람에 갑자기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기로 했다고.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큰아들이 IT 전문가니까 아버지로서 기대가 클 텐데.

"큰애가 술.담배를 전혀 몰라요. 부모가 사업하느라고 어렸을 때부터 사립학교 보내서 한국인 친구들도 없고. 직장도 펜실베이니아의 소도시에서 다녀 한국 사람과 어울릴 기회가 없었지. 한국어로 말하고 알아듣고 하는 건 하는데 한글을 아직 몰라. 사업 물려받으면 한글부터 배워야 돼요, 매출장부를 읽으려면. 사업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지, 뭐."

당 사장의 사무실 벽 한켠에는 액자에 고이 모셔진 10년 전 중앙일보 인터뷰 기사가 걸려 있었다. 그 사진 속 당 사장과 지금 의자에 앉아 있는 그는 똑같은 모습. 10년의 세월이 흐름을 멈췄다, 그에게만.


김일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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