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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옥설(理屋說) : 집 고치기와 버리기

‘대장장이 집에 식칼이 없고, 미장이집 구들 빠진 채로 삼 년 간다’는 말처럼 전문기술자인 신랑이 우리 집 일은 나 몰라라 하고 수리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드디어 2층을 통째로 고친다. 그러고 보면 이사온 첫 해에 비가 몹시 퍼부어 부엌 지붕에서 물이 새고 나서야 평소 구멍 뚫린 채 방치했던 지붕을 부랴부랴 고친 전력이 있긴 하다.

고려시대의 이규보는 집 수리 과정을 담은 한문 수필 『이옥설』에서 처음에 쉽고 간단하게 해결 할 수 있는 것을 방치하면, 나중에 수습하기 어렵고 큰 힘이 들어간다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그는 일상적인 체험에서 얻은 깨달음을 인간의 삶의 이치와 나라의 정치에 적용하였다. 사람의 몸이나 나라의 정치도 잘못되고 있다는걸 알면서도 망설이며 고치지 않으면 나중에는 비용도 많이 들게되고, 나라의 정치도 백성을 좀먹는 무리들이 도탄에 빠트리는걸 그대로 둔다면 나중에는 위태롭게 썩어버린 재목처럼 되어서 때가 늦을수도 있으니 평소에 살펴보고 삼가해야 한다고 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법정스님은 공양그릇과 승복이 전부여서 무소유의 삶을 부러워하게 만들었고, 성당 신부님은 오실 때와 마찬가지로 떠나실 때도 트렁크 하나로 떠나가셨다.

이번에 집을 고치면서 제대로 짐정리를 하게되었다. 버리고 버려도 끝이 없이 나오는 걸 보니 평소에 내가 정리의 여왕이라는건 개뿔이었다. 1년에 한 번도 쓰지 않는 건 정리하라는데,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미국까지 싸들고 와서 35년 간직했던 짐을 정리하며 중얼거린다. 아이고 내가 미쳤지! 그러면서도 하나씩 꺼내 망설이며 만지작거린다. 신혼 때 입었던 재킷은 팔도 들어가지 않고, 바지는 종아리까지만 들어가고, 블라우스는 손수건만해서 저걸 내가 어떻게 입었나 한다.



그래도 나에게는 소중하게 간직하는 몇개의 물건이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고 기쁨이다. 부지런한 시아버지가 평생을 쓰셨던 녹이 슨 물뿌리개. 엄마가 남편 이름에 철이 들어있다고 간직하라던 쇳조각.

젊은날 음악에 빠졌던 남편이 모아온 해적판 LP 레코드판들. 남편이 만들어 준 나를 닮은 까만 말과 기관총 모형, 돌하루방과 파도소리가 들리는 소라. 이것들은 앞으로도 나와 함께 늙어갈 것이고 언젠가는 한줌의 재로 사라질 것이다.

몇날 몇일을 정리한걸 모조리 금요일부터 잔디밭에 내놓으니 여기저기서 이웃들이 골라간다. 창문으로 내다보며 하나씩 없어질 때마다 나의 추억도 함께 보낸다. 누군가에게 요긴하게 쓰일 것인데도 거기에 담긴 추억도 가져 가는것 같아서 섭섭하다. 책장, 책상, 의자, 식탁, 설합장, 장식장, 그릇, 운동기구 많기도 많다. 붕어와 잉어를 잡았던 낚시대에선 산길을 굽이굽이 걸어갔던 봄날의 안양 저수지가 떠오르고, 비디오는 한국 드라마를 주말마다 테이프를 엄청나게 빌려다 반납하는 날짜를 맞추느라 졸면서 보았다.

이제 집수리가 끝나면 다시 집안이 꾸며질텐데, 그속에서 이리저리 채이며 살고 싶지 않은데, 이번에는 정말 꼭 필요한 만큼만 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아키아와 홈굿이랑 가구점을 수없이 드나들고 있는 내모습이 선하다

박명희/VA 통합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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