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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현의 시가 있는 벤치] 가을 서정(抒情)

가을 서정(抒情)

바람 가볍고 볕 따갑지 않은 오후 나무들 벌써 웅크린다
낙엽 긁는 손끝으로 스며오는 차가운 정기, 아직
살아있는 낙엽 말이리라
삶이란, 무언가 긁어모으는 갈퀴 같은 손
오후 산 그림자 전율처럼 스쳐간다
석양에는 바다에 나가 여름을 전송하며
싱싱한 게 들어 올리고
그 바람 너에게도 주고 싶다
아직 둥글지 않아 더 차가와 뵈는 달밤
새 낙엽 위해 묵은 잎 태운다
낙엽 없으면 가을도 아니지
세상 살기 더러 싫은 듯 허탈해지거든
산다는 게 그렇게 시시하거든
맘껏 먹거나 마셔보라 하더라
있는 대로 배설해 보라 하더라
만강으로 채우고 비우는 단세포의 율동으로
모든 거룩한 것들과 시시한 것들을 낮은
곳으로 내려오게 하라더라
낙엽의 말


화씨 50도, 초가을 되면 해도 그리 따갑지 않다. 어언 한해의 삶 마감하는 나무들의 겨울 잠 채비가 시작된다. 나뭇잎들 웅크리기 시작한다. 낙엽 긁는 손끝에도 가을 정기 스민다. 아직 떠나지 않은 잎새들, 어쩌면 그들의 숨소리일지도 모른다. 낙엽을 긁는데 왜 삶이 비칠까. 억척스레도 살아가는 고달픔, 갈퀴 위로 오버랩된다. 삶이 그만큼 힘겹고 고단 해설까? 지는 석양으로 비껴가는 일순의 산 그림자, 전율처럼 스친다. 신의 옷자락 같다. 바닷가에 사는 죄로 가끔은 바다에도 문안을 드려야 한다. 여기선 해가 바다에서 떠서 바다에 지는 것 같이 믿으며 살고 있으니까. 덕분에 가끔은 바다낚시도 가고 살아 있는 게들의 얼굴도 본다. 바닷바람도 게처럼 싱싱하다. 이렇게 모든 것들이 청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 역동적인 것들을 만나면 언제나 그리운 너에게도 모두 주고 싶은 것이다. 가을 서정이 안고 오는 시적 화자의 애정이다. 그리움이란 그런 사람 생각하며, 마음 건네며 사는 것, 언제나 하루의 마지막에 남는 일기(日記)다.

임창현/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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