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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마운틴 ‘부끄러운 과거, 암울한 미래’…WP, 변화의 기로에 선 유적 조명

백인우월주의 재건의 텃밭 제공
‘암벽화 철거 vs 존치’ 대립 심화

미국에서 가장 큰 남부연합 기념물로 꼽히는 스톤마운틴. 애틀랜타 근교에 자리한 높이 1700피트, 면적 1만7000 스퀘어피트(sqft)의 화강암 덩어리가 샬롯츠빌 백인우월주의 유혈사태를 계기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1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남부연합의 전쟁 기념물로는 미국에서 가장 큰 스톤마운틴의 남쪽 사면에는 소위 ‘남부연합 영웅들’의 모습이 새겨진 암벽화가 있다. 양각으로 된 세계 최대 규모의 부조라는 평가도 있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듯 하지만, 현존하는 가장 큰 남부연합 상징물이라는 평가가 엇갈리면서 철거 요구도 거세게 일고 있다.

이 때문에 스톤마운틴은 조지아 주지사 선거를 요동치게 하는 의제일 뿐만 아니라 뜻하지 않게 남부연합 기념물의 존폐를 놓고 날로 격화하는 국가적 의견대립의 중심에 있다. 주지사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경선에 뛰어든 스테이시 아브람스 조지아주 하원 대표는 지난달 스톤마운틴 암벽화가 “조지아주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며 즉각 철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애틀랜타의 일부 민주당 인사들과 ‘흑인지위향상협의회(NAACP)’가 흑인인 아브람스의 주장을 거드는 가운데 다수의 공화당원과 남부연합 유물을 보존하자는 그룹에선 아브람스 대표의 주장에 날선 반응을 보이며 대립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으로 주지사 경선에 참가한 케이시 케이글 조지아 부주지사는 “정치적 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선동적인 언어를 동원해 조지아 주민들을 양분시키기 보다는 역사를 없애지 않고 보존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암벽화 제거에 반대하는 흑인 정치리더도 있다.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유엔대사를 역임한 앤드류 영 전 애틀랜타 시장은 암벽화를 가루로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한다는 점에서 남북전쟁에 대한 재조명과 역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재싸움”에 손상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조지아 정계가 암벽화 제거 논쟁이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가운데 조지아대학(UGA)의 찰스 불록 정치학 교수는 “조지아 전통 보수층에게는 이(암벽화 제거) 문제가 결코 작지 않아 보이지만 젊은층에겐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스톤마운틴에 담겨진 정치적 함의가 무엇이든 간에 조지아에서 받아들이는 모양새가 최근 남부연합 상징물들을 밤 사이에 즉각 철거한 볼티모어 또는 뉴올리언스와는 또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남부연합 기념물들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 방대한 양의 책을 저술한 조 크레스피노 에모리대 역사학 교수는 “옮길 수 없는 조각”임을 강조하면서 “산의 옆면이므로 파괴시키거나 그대로 두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학자들은 유적지로서 인식되기보다 교육 장소로 옮긴 뒤 플래카드와 큐레이터를 통해 언제, 왜 기념물이 설립됐는지 역사적 배경을 알리는 것이 더 유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크레스피노 교수는 “로버트 리 불러바드와 제퍼슨 데이비스 드라이브처럼 바뀔 수 있는 도로와 공원 이름은 없애되, 그(암벽화 같은)작품에는 공무원들이 전체 역사를 궤뚫어볼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을 붙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인근 로렌스빌에 살면서 이따금 호수와 산책 트랙을 걷기 위해 연회원권을 갖고 스톤마운틴에 피크닉을 가는 나오미 존스는 그동안 암벽화의 의미를 애써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11세, 8세, 그리고 두 살배기 손자를 둔 흑인인 존스는 최근 샬롯츠빌에서 벌어진 유혈사태를 계기로 손자들에게 남북전쟁과 백인우월주의 운동에 대해 가르쳤고 샬롯츠빌에서 반나치 시위에 참가했다 숨진 헤더 헤이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고 한다. 존스는 “11살짜리 손자가 ‘누군가에게 해를 주면 왜 없애지 않느냐’고 물어서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내말을 붙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기념물로 지정되기 전까지 스톤마운틴은 화강암 채석장이었다. 이곳의 돌들은 곳곳의 공사현장으로 보내졌고 미 국회의사당과 파나마운하 건설에도 돌들이 사용됐다. 그러던 채석장이 기념물로 둔갑한 것은 1915년 남부연합 후손 딸들의 연맹체가 스톤마운틴의 깎아지른 남쪽 사면에 백인 남부연합 영웅들을 위한 조각물을 만들자고 주장한 데서 유래된다. KKK가 스톤마운틴 정상에서 십자가를 불에 태우며 조직의 재건을 천명한 것도 같은 해의 일이었으며, 이 때를 기점으로 스톤마운틴은 KKK의 본산지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은 급기야 1948년 스톤마운틴에서 ‘상실한 대의명분(Lost Cause)’을 주창하기에 이른다. 남부연합의 수정주의 운동이 부활한 것이다. 노예 보호를 최소화하고 남부의 존엄을 되찾겠다는 이 사조는 남북전쟁 발발의 직접적인 단초를 제공했다. 남동부 지주들과 노예제 옹호론자들의 결집과 지지를 이끌어낸 장소도 스톤마운틴이었던 셈이다.

처음 암벽화를 조각한 이는 거츤 보글럼이다. 사우스 다코타에 있는 러시모어 국립공원 조각을 만든 예술가다. 전체 윤곽을 드러내고 리 장군의 머리를 만들다 돈의 용처를 둘러싼 잡음에 휩싸인 끝에 1925년 작업에서 손을 뗐다. 이어 헨리 어거스터스 루크맨이 리 장군의 머리 조각을 되돌리고 말에 올라탄 세 명을 다시 새겼다. 이때가 1928년이다. 이후 거의 40년간 비용 문제로 방치되다 주정부가 조성한 펀드 200만달러로 스톤마운틴을 매입한 뒤 국립공원으로 꾸미면서 작업이 재개됐다. 그러나 작업 중단 요구와 해체 움직임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한동안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집결지처럼 인식됐던 스톤마운틴은 사실상 지역 주민들의 여가활동 장소로 기능하며 늘 많은 인파로 붐빈다. 산책로가 조성돼 있고 골프장이 마련돼 있으며 호수 옆에는 매리어트 리조트가 들어서 있다. 밤마다 유명한 레이저쇼가 펼쳐지기도 한다. 이런 변화들로 인해 디캡 카운티에 자리잡은 스톤마운틴은 행락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이중에는 흑인과 이민자들도 다수다.

스톤마운틴공원관리협회의 존 뱅크헤드 대변인은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인우월주의 본산지임을)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원 방문객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입장객들은 스톤마운틴과 인종차별을 그다지 연관짓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스톤마운틴이 소수의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게 마치 성지처럼 여겨지는 것은 분명하다. 공원관리협회는 지난달 KKK가 산 정상에서 십자가 화형식을 개최하도록 협조해달라며 제출한 신청서를 거절했다. 공원은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며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지난 2015년 공원관리협회는 정상에 ‘자유의 종’을 세우려는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센 반발에 부딪혀 계획이 무산됐다. ‘자유의 종’은 1963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유명한 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의 “조지아주 스톤마운틴에서 자유의 종이 울리게 하자”는 문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허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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