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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커피 반 잔의 가치

박비오 신부 / 천주교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2차 세계대전 때 600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을 학살하는데 최대 장애가 되었던 것은 그들을 가스실에 집어넣어야 하는 독일군인들의 양심이었다고 한다. 그들도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독일은 고도의 심리전을 전개했다.

그것은 유대인들을 짐승으로 전락시키는 것이었다. 인간을 죽이기는 힘들어도 인간 모습을 한 짐승이라 생각되면 그때부터는 무슨 짓이든 양심의 가책을 덜 받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유대인 수용소에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았다. 3만2000명이 수용된 곳에 화장실 한 개만을 지어놓았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수용소의 문은 닫혔다. 하루 두 번까지 화장실 가는 게 허용되었지만 일과 시간에만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이 화장실 앞에서 한없이 기다려도 제 차례가 오기 전에 문이 닫혔다. 따라서 그들은 매일같이 배변의 고통에 시달렸고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식기와 깡통에 배설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수용소는 온통 배설물로 악취가 나고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찼다.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인간이기보다는 동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씻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거기다 자신들의 식기에 배변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 그들을 짐승처럼 보기 시작하는 것은 독일 군인들이 아니라 유대인 자신들이었다.



그러나 몇몇은 그러한 극한 상황을 견뎌내고 기적처럼 살아남았는데 그 이유는 반잔의 커피 때문이었다고 한다.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모두에게 한 잔의 따뜻한 커피가 배급되었다. 물론 악취를 풍기는 구정물과 비슷한 것이었지만 잠을 깨고 추위를 이기는 데는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중 일부는 커피를 반쯤만 마시고 나머지 반으로는 얼굴을 닦고 이를 닦는 데 사용했다. 다른 사람들이 비웃어도 그들은 스스로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자신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짐승으로 사느니 사람으로 죽는 편을 선택한 셈이다. 그런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만이 결국 끝까지 살아남았다. 반 컵의 커피는 마셔버리면 한두 모금에 불과하지만 자신을 짐승으로 만들 수도 있었고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었던 최소한의 자존감이었다.(전삼용 요셉 신부의 강론 편집)

물질주의가 활개를 치는 오늘날 우리를 물질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것을 가로막는 '반 컵의 커피'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없을까. 예수님은 일찍이 그의 제자들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마태 17.1-9) 그 모습은 예수님이 천상세계에서 누리던 당신의 본질적인 모습이었고 장차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어질 영광스러운 모습이었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품고 거친 세파를 이겨냈다. 물질만능주의로부터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을 지키는 것도 예수님의 그 모습,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그 모습을 품는 것이 아닐까.

park.pi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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