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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 스토리] 꿈에 그리던 보르도에서

배문경
법무법인 김앤배 공동대표변호사·Wine Scholar Guild 정회원

나는 지금 와인 애호가들이 '성지'라고 부르는 프랑스의 2대 와인 산지 보르도와 부르고뉴 중 보르도를 여행하고 있다. 막 수확을 시작한 이 지역은 폭풍전야처럼 조용하지만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지롱드강의 오른쪽, 이른바 우안의 생테밀리옹은 전세계에서 온 여행객들로 붐비고, 나란히 줄이은 와인 가게들의 종업원들은 손님을 잡으려고 이리 저리 분주히 뛴다. 온통 설레임과 흥분, 분주함으로 가득한 축제, 그 자체이다.

반면에 "요즘엔 보르도도 불경기?"라는 소문이 사실인 듯, 길을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 테이스팅을 해 준다는 난리 속에 잠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가게에 들어서면 직원들이 와인에 대한 질문으로 손님의 와인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판단한 후 아, 이사람이 와인에 대해 많이 알고 있구나! 관심이 많구나! 하고 판단되면, 바로 추가 영업에 돌입한다. "저희 매장 지하의 와인 셀러로 모시겠습니다. 지하로 내려가실까요?"하며 지하 와인 셀러로 극진하게 모신 다음, 더 비싼 와인들을 줄줄이 내놓고 마셔보기를 권한다. 물론 무료다. 이런 생테밀리옹 거리의 모습은 마치 백화점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화장품 코너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옛말은 틀리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이 공짜'라고 했던가. 몇년 전 버건디(부르고뉴)에서도 놀랐지만, 현지에서 팔리는 와인 가격은 미국보다 엄청나게 비싸다. 그 비싼 가격을 짐작하면서도 지갑을 열게 하는 매우 공격적인 세일즈 전략이 이 비싼 와인을 무료 테이스팅 하는 것이다. 나도 한 가게를 방문했다가 보기 좋게 공격적 세일즈의 먹잇감이 됐다. 이 가게에서 와인 테이스팅을 한 텔테르 로트보프라는 와인이 마음에 쏙 들었고, 가격을 물어보니 1986년산이 290유로라고 했다. 지금 환율로 약 350달러다. 스마트폰으로 미국에서 팔리는 가격을 검색해 보려니 인터넷이 안 터졌고, '그래 여기까지 와서 뭐, 결심했어'하고 결제를 하려는 순간 주인 아저씨와 작은 실랑이가 생겨 못 사게 됐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이후에 인터넷으로 미국에서 팔리는 가격을 알아 보니 약 130달러면 살 수 있었다. 하마트면 3배나 비싸게 살 뻔한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바가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장 비싼 공짜술을 마신 '업보'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안 좋은 경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한 가게의 직원 손에 이끌려서 들어간 가게에서 너무나도 친절하고 후덕한 시골 인심을 가진 한 와이너리 주인을 만나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바로 보르도의 5대 샤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샤토 페트뤄스, 바로 그 페트뤄스의 원래 소유주였다. 샤토 페트뤄스는 로르도의 우안, 즉 지롱드강의 라이트뱅크 포므롤 지역 와이너리다. 5대째 내려오는 와인 집안에서 5년 전 샤토 Guadet이라는 와이너리를 물려 받았고 지난해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훌륭한 와인 생산자 상을 받은 장본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소박하고 순수한 모습을 간직한 그의 모습에서 뿌리깊은 전통과 역사, 그것이 만들어 낸 위엄과 겸손을 느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느낀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올해 프랑스 와이너리의 작황은 어떨까? 궁금해서 알아 봤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올해 프랑스 와인은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 와인들을 좋아한다면 지금 당장 사 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프랑스 와인 산지에는 올해 봄, 때 아닌 서리가 포도밭을 휩쓸고 지나감으로써 초토화됐다. 프랑스 전체적으로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17%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으며, 이는 지난 최근 5년 평균 수확량보다도 16%나 줄어든 것이다. 1991년 이후 26년 만에 최악의 작황을 맞았고 특히 보르도가 직격탄을 맞았다. 보르도 일부 와이너리의 수확은 지난달 21일에 시작됐다. 예년보다 열흘 빠른 것으로, 역사상 가장 빠른 수확이 시작됐다고 프랑스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포도의 품질을 약간 높이기는 하였지만 봄서리 때문에 일부 보르도 지역 포도밭은 70%의 손실을 입는 등 보르도 전체적으로 46%나 포도 수확량의 감소가 예상된다.

잘 알다시피 보르도의 5대 산지는 레프트뱅크인 메독과 그라브, 소테른, 라이트뱅크인 생테밀리옹과 포므롤이다. 레프트뱅크는 카베르네 소비뇽, 라이트뱅크는 메를로를 주로 생산한다. 이중 더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라이트뱅크인 생테밀리옹과 포므롤이며, 포도 품종으로는 메를로이다. 그라브도 라이트뱅크 정도는 아니지만 메를로를 많이 생산하는 지역으로 레프트뱅크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음을 눈으로 확인했다. 5대 샤토만 놓고 보자면 4개는 레프트뱅크의 메독에, 1개는 레프트뱅크의 그라브에 위치해 있다. 5대 샤토 중 샤토 오브리옹만이 그라브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샤토 오브리옹이 서리 피해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제일 높다. 또 5대 샤토를 제외하면 라이트뱅크인 포므롤에서 5대 샤토만큼 유명한 샤토 페트뤄스의 가격이 급등할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메를로를 주로 생산하는 라이트뱅크의 와인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레프트뱅크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보르도 와인은 블랜딩이다. 레프트뱅크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원료로 해서 메를로를 섞는다. 따라서 2017년 보르도 와인 가격은 크게 오를 수밖에 없고, 라이트뱅크의 인상폭이 더 클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그러므로 5대 샤토도 이번 빈티지는 많이 오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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