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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무릎 꿇은 장애학생 엄마들

6년 전 미국인 농아 20여 명을 대동하고 서울과 제주 4박5일 여행을 함께한 적이 있다. 농아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데프네이션(Deafnation)'에서 신청을 받아 한국 방문 희망자를 모집했던 것이다. 당시 동행 취재기자로서 이들과 일정을 같이 했던 나는 시종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인들이 과연 외국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일찌감치 깨졌다. 이들의 표정은 여느 정상인들의 단체여행 모습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상기되었고, 흥이 넘쳤다. 말을 대신한 수화는 어지럽게 난무했고, 웃음과 호기심, 모험심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식을 줄 몰랐다. 이들은 안내 없이도 손짓과 표정으로 물건값을 깎았고, 때밀이도 즐겼으며, 노래방에서는 리듬과 비트만으로도 열광적인 시간을 보냈다. 장애가 있어 주눅들고,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 여겼던 나의 고정관념은 여지없이 깨졌다. 한국의 장애인들이라면 과연 저렇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었을까,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데프네이션의 기억이 불쑥 떠오른 것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유통되고 있는 안타까운 동영상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에 장애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가 세워지는 것을 놓고 주민토론회가 열린 자리였다. 장애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우리에게 욕을 해도, 때려도 감수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학교는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라고 무릎을 꿇고 읍소했다. 그러나 방청객을 가득 채운 주민들 속에서는 날아온 말은 "(학교 보내는 건)알아서 해" "쇼하지 마라"는 야유와 고성이 날아왔다. 장애학생 부모의 가슴을 후비는 잔인한 말의 화살이었다.

장애아 부모들 십 수명은 연단에 나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주민들의 이해를 호소했지만 이날 토론회는 장애인을 수용하는 특수학교에 대한 주민들의 강한 거부감만 확인하고 끝났다.

표면적으로 주민들은 이 학교 부지에 국립한방병원이 들어설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인식은 장애시설이 들어서면 인근 집값이 떨어진다는 집단심리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결국 특수학교를 '혐오시설'로 인식하고 '내 뒷마당에는 안돼(Not In My Backyard)'라는 님비(NIMBY) 현상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특수학교 기피 현상은 강서구 뿐만 아니어서 향후 설립 추진되는 전국 19개 학교가 대부분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몸이 불편한 장애학생들은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다른 지역 학교에 통학하는 것은 물론, 기존 특수학교는 미어터져 교육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장애학생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부모들, 이런 부모들의 언행을 지켜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장애인에 대해 어떤 시각을 품게 될까 불문가지다.

미국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철저하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들도 정상인과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음을 교육시킨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취약한 한국에서 살았던 이들이라면 미국의 장애인 배려가 '정상인에 대한 역차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도하다는 인상까지 받는다. 그런 사회 환경과 사람들의 배려심 속에서 장애인들은 주눅들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데프네이션 취재 후 썼던 칼럼의 맺음글을 다시 써본다. "신체적으로 듣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상인이라도 남의 말에는 귀를 막고 독이 묻은 말을 쏟아내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이들이야말로 기능적 농아인이 아닐까."


이원영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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