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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마스터'라 칭송한 미국 코미디언?

"나는 평생 아홉 살로 살았다. 아홉 살은 순수하고, 유머 감각이 대단하며, 모든 진실을 꿰뚫어보니까."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기꺼이 "마스터"라 부른 남자다. 배우 짐 캐리가 "지금의 내가 있게 한 코미디의 완전체"라 칭송한. 할리우드는 지금 지난 8월 20일 일요일 오전 라스베이거스 자택에서 별세한 20세기 미국 최고의 희극인, 제리 루이스를 향한 슬픔에 젖어 있다. 향년 91세. 어릴 적부터 약했던 심장과, 1965년 슬랩스틱 코미디 쇼 도중 다쳐 오랫동안 고생한 등의 통증 때문일까. 말년 괴팍한 태도와 독설로 구설에 올랐지만, 그가 평생 쌓아온 명성은 흠집조차 나지 않을 만큼 견고했다.

루이스는 보드 빌 출연자였던 부모의 영향으로 다섯 살 때부터 자연스레 연예계에 입문했다. 스타덤에 오른 건 1946년 가수 딘 마틴과 콤비로 활동하면서다. 대본이 있는 촌극이 일반적이었던 당시 이들의 즉흥 만담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루이스의 괴짜 같은 익살을 마틴이 차분하게 받아치는 형태. 10년 만에 불화로 팀이 해체된 뒤 루이스는 영화계에서 새로운 재능을 떨친다. 주연 겸 각본?연출에 나선 '너티프로페서'(1963)는 성공리에 상영되며 훗날 에디 머피 주연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루이스가 노련하고 오만한 TV 쇼 스타, 그러니까 대중이 생각하는 그 자신에 가장 가까운 조역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 범죄 드라마 '코미디의 왕'(1983,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제36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랐다. 그러나 그가 '국민 희극인'으로 각인된 계기는 따로 있다. 1966년부터 2010년까지, 매해 노동절마다 진행자로 나선 근위축증 협회를 위한 TV 모금 방송이 그것.



그가 1977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이유다. 다큐멘터리 '메소드 투 더 매드니스 오브 제리 루이스'(2011, 그레그 바슨 감독)에서 그는 점점 더 잦아지는 심장마비를 고백하며 죽음을 내다보는 듯했다. 그럼에도 더 심장 뛰는 일을 찾아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의 입버릇처럼. "무대에서 생애 첫 박수를 받던 순간 가슴 가득 울리던 심장고동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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