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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신통(神通)과 이적(異蹟)

원불교 LA교당 / 양은철 교무

불교공부를 한다고 하면 신통 같은 거 할 줄 아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간혹 계신다. 보통 사람들은 도덕의 대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소 유무의 근본 이치는 알거나 모르거나 호풍환우(呼風喚雨, 바람과 비를 불러일으킴)나 이산도수(移山渡水, 산을 옮기고 물을 건너는 것) 등의 신비한 술법만 있으면 그를 도인이라 부른다.

원불교대학원 수업시간에 현지인 학생이, "신통을 바람직하게 사용하면 꼭 해만 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정법회상에서는 대체로 신통과 이적을 경계한다. 이유가 뭘까.

첫째, 신통이 세상을 제도하는 데에 실질적인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폐해가 되기 때문이다. 신통을 원하는 사람은 대개 세속을 피하여 산중에 올라, 인도를 떠나 허무에 집착하며 주문이나 진언(眞言) 등으로 일생을 보내는 것이 예사이다. 만일 온 세상이 다 이것을 추구한다면 사농공상과 인륜기강이 무너지게 된다.

둘째, 진리를 구한다는 사람들이 도덕의 근원을 알지 못하고 차서 없는 생각과 옳지 못한 욕심으로 남 다른 재주를 구한다면, 그들은 한 때 허령으로 혹 무슨 이적(異蹟)이 나타나면 그것을 악용하여 세상을 속이고 사람을 해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신통을 추구하게 되면 지혜가 어두워진다. 좌선을 할 때, 방법이나 결과는 물론 이전의 특정 경험 등에 집착하게 되면 참다운 정(定)에 드는 것은 점점 요원해 진다. 깨달음에는 견성을 하는 도통(道通), 이치를 응하여 법도를 건설하는 법통(法通), 신령한 밝음을 얻는 영통(靈通)이 있다. 도통 법통을 먼저 하고 끝으로 영통을 해야 한다. 만일 영통을 먼저 하면 사(邪)에 떨어져 그릇되기 쉽고 공부가 커 나가지 못하게 된다.

대종사께서도 "신통은 말변(末邊)의 일", "도(道)와 덕(德)에 근본하지 않는 신통은 일종의 마술(魔術)"이라고 규정하며, 원불교 개교 후에는 이를 엄금하시고 오직 인도상 요법을 주체 삼아 일용 범절과 평범한 도로써 중생제도에 힘써왔다.

물론, 정도(正道)를 잘 수행하여 욕심이 담백하고 행실이 깨끗하면 자성의 광명을 따라 혹 불가사의한 자취가 나타나는 수가 있지만, 이것은 구하지 않는 가운데 자연히 얻어지는 것이다.

견성성불을 근본이라 한다면 신통은 지엽이라 할 수 있다, 근본에 힘쓰면 지엽은 따라서 무성해 지지만, 지엽에 힘을 쓰면 결국 근본은 말라지게 마련이다. 신통을 드러낼 것은 없지만, 제대로 수행을 하면 신통은 따라오게 마련이다. '신통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 '신통이 없는 것'은 다른 얘기이다.

종교 경전의 신통과 이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간혹 성경의 신통과 이적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애쓰는 신학자들을 보게 된다. 종교 경전은 역사서라기보다는 신앙고백서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 이야기가 갖는 성자의 본의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해당 경전의 신도가 교조의 신통과 이적의 물리적 사실에 믿음을 갖는 것에 대해서도 굳이 탓할 생각은 없다.

drongiand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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