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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사랑의 정화

김정국 골롬바노 신부 /성 크리스토퍼 성당

악에 대해 체험한 사람을 고뇌하게 하는 것은 세상에 이 악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느냐 하는 풀리지 않는 물음이다. 최근 또 다른 테러소식을 접하면서 전쟁, 질병, 자연재해, 살인 등 계속해서 일어나는 세상의 불행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되묻게 된다. 이런 악에 대한 체험은 흔히 하느님의 실재를 부인하거나 그분의 선과 사랑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결과를 낳는다.

하느님이 선한 분이라면 세상의 악과 고통에 대해 책임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많은 사상가와 신앙인들이 하느님 편에서 변호하고자 시도한 것처럼 악은 어떤 물체에 대한 지식처럼 명쾌히 설명되거나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것은 마치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가 미스터리이듯이 악도 우리에겐 미스터리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악이 외부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그 실재를 겸허하게 마주하면서 삶과 연관된 성찰과 실천을 통해서만 알게 되고 내면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느님에 대한 얘기를 우리에게 할 때 실존적 인간의 체험적 이해를 배경으로 한다. 원죄에 대한 해명에서 창세기는 우리의 지적 호기심에 답을 주려고도 악의 근원에 대해 다 밝혀 설명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악은 내 안에서 마주하고 싸워야 할 대상이자 부조리인 죄이고 우리 삶을 무의미로 돌리는 것이다. 죄는 이런 악이 인간 안에 일으키는 작용을 말한다.

창세기는 인간 내면에 드러나는 세 가지 심리적 변화를 통해 인간에게 들어온 악인 죄의 내밀한 반응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첫째가 부끄러움 즉 수치심이다. 원죄 전의 아담과 하와는 본디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죄가 들어온 뒤 수치심으로 가리고자 했다고 쓰고 있다. 둘째 반응은 두려움이다. 에덴을 거닐던 원래 인간은 마치 친구를 대하듯이 하느님과 마주 할 수 있었던 반면 원죄의 결과는 두려움에서 하느님을 피하여 나무 사이에 숨게 된다. 셋째 반응은 자기를 방어하고 이를 위해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한때 아담에게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구나(창세 2,23)"하고 반기던 여자는 이제 비난과 핑계의 대상이 되고, 그가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3,12) 여자를 언급할 때는 은연중 하느님께 책임을 돌리기까지 한다.



우리는 내면에 이런 반응과 부조화를 느끼며 매일을 산다. 우리는 먼저 냉철하게 외부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양심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선과 정의와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갈망이 그저 환상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행복을 차지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악은 현실이지만 기쁨은 우리의 소명이다. 하느님은 당신 기쁨을 우리 기쁨에서 찾으시는 분이시라는 확신으로 걸어가는 것이 사랑의 정화이다. 우리 안에 사랑이 아닌 것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는 깊은 죄 속에서 고뇌하면서도 다시 사랑의 회복을 갈구하는 존재로 사는 일이다.

bano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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