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명성 뒤 숨겨진 악행에 재평가 논란
[뉴스 속으로] 뉴욕시내 '영웅' 동상 철거 여론 확산, 왜?
의사 마리온 심스, 흑인 여성 임상실험
18대 대통령 그랜트, 유대인 축출 명령
드블라지오 시장 '혐오물 심의위' 구성
영웅으로 칭송 받아 오래 전 도시 곳곳에 세워졌던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과 상징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뉴욕시에서 확산되고 있다.
빌 드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지난 16일 이 같은 상징물들에 대한 심의와 철거 여부를 논의할 '혐오 상징물 심의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회는 현재 뉴욕시 곳곳에 설치돼 있는 동상과 기념관, 각종 상징물들을 선정해 심의할 예정이다. 이 위원회의 활동 기간은 90일이다.
이 같은 심의위원회가 구성된 것은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인종주의 유혈 사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후 남북전쟁 당시 노예 제도 유지를 위해 북군과 싸웠던 남부연합군 상징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전국으로 퍼졌다. 뉴욕시에서도 남부연합군 사령관 로버트 리와 스톤월 잭슨의 흉상을 철거하기로 했는데, 이제는 남부연합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영웅으로 평가됐던 인물의 동상이나 상징물까지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뉴욕시에서는 현재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재평가 논란이 일고 있다. 주요 쟁점은 '영웅'들이 생전에 자행했던 각종 악행들이다. 이 같은 논란에 휩싸인 대표적인 인물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마리온 심스, 그리고 율리시스 그랜트다.
콜럼버스는 이탈리아의 탐험가로 미 대륙을 발견한 인물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미 대륙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고 학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06년 스페인에서 발견된 콜럼버스 점령 당시 기록에 따르면 콜럼버스는 그에게 대항하는 원주민들을 학살한 뒤 신체를 자르고 그 잘린 신체들을 들고 길거리에서 행진을 했다. 다른 원주민들의 추가적인 대항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또 좀도둑 혐의로 잡힌 사람의 귀와 코를 자른 뒤 노예로 팔았고, 죄를 지은 한 여성은 나체 상태로 거리 행진을 시킨 뒤 혀를 잘랐다는 기록도 남아 있는 등 역사의 한 부분은 그를 포악한 독재자로 평가하고 있다.
또 다른 논란의 인물은 업타운 센트럴파크 103스트리트에 동상이 세워져 있는 의사 마리온 심스다. 1800년대 중.후반에 부인과 의사로 활동한 그는 방광질병 치료법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흑인 노예 여성들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당시 의학계에는 마취가 가능했지만 흑인이 백인보다 통증을 덜 느낀다는 미신 때문에 마취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역사학자와 윤리학자들에 의해 비윤리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또 다른 논란의 인물은 18대 대통령을 지낸 율리시스 그랜트. 그는 남북전쟁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도와 연합 북군 사령관으로 노예 해방에 기여한 인물이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연합군 사령관 시절인 1862년 내린 유대인 축출 명령이다. 그는 당시 불법적으로 이뤄진 목화 시장을 단속하기 위해 이런 명령을 내렸는데, 대부분이 유대인들에 의해 거래됐기 때문에 유대인 축출을 지시한 것이다.
브루클린 로저스애비뉴에는 그랜트가 말에 타고 있는 동상이 1896년 세워졌고, 맨해튼 리버사이드드라이브에는 그랜트의 시신이 매장된 무덤이 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세 인물의 동상들이 심의위원회 심의 대상으로 선정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신동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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