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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석·윤시내 부부의 시베리아~몽골 횡단 기차여행-⑤

24시간 깨어있는 백야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스토엡스키 흔적 가득한 레닌 혁명 발상지
100년 된 러시아식 찜질방 반야서 심신 새롭게

엄밀히 따져서 세인트 피터스버그(St. Petersburg- 러시아어로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모스코에서 끝나는 시베리아 횡단 기차여행에는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러시아가 자랑하는 예술과 문화의 도시, 작가 도스토엡스키가 살고 글을 쓴 도시, 레닌 혁명의 발상지, 따라서 우리 세대에게는 레닌그라드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도시를 여행에서 뺄 수는 없는 일이다.

모스코에서 초고속 기차로 4시간(2등, 1인당 120달러).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한인 여행사가 있어서 도착하는 날 밤 9시에 시작하는 ‘백야의 로망스’(1인당 3만9000원) 투어를 택했다. 하지를 약 일주일 앞둔 터라 밤 9시에도 대낮처럼 환하다. 투어 참가자는 젊은 여자만 6명이어서 우리처럼 노인이 끼기에 약간 어색하고 주책없어 보였지만 이미 늦은 일. 한국어를 독학했다는 인형처럼 예쁜 러시아인 안내자를 멀찌감치서 따라간다. 그런데 웬일인지 로맨틱한 기분이 전혀 나지 않는다. ‘바실리 곶’이라 불리는 강가를 남편 손 잡고 걷는 것도 아니고, 한국어를 잘하기는 하지만 말투에서 외국인 냄새가 펑펑 나는 안내자의 러시아 역사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사진 찍기 바쁜 아가씨들을 보고 있기도 멋쩍고, 이건 아닌데 싶은 마음만 자꾸 인다. 하기야 로망스가 어찌 밤이 낮같이 밝은 백야만으로 가능하겠는가.

다음날은 ‘클래식 상트페테르부르크’ 투어를 택한다(1인당 7만1500원). 이번 그룹의 인원은 열다섯인데 미국에 사는 젊은 부부가 양가의 부모를 모시고 파리에서 시작한 크루즈 여행 도중 여기에 들렸다고 한다. 유모차를 타고 다니는 어린아이까지 모두 열 명이다. 카자흐스탄 한국인 안내자는 키가 훤칠하고 피부가 유난히 희고 이목구비가 뚜렷, 영화배우 못지않은 쾌남이다. 러시아에 인종차별이 전혀 없어서 고려인이라고 불이익을 당한 적이 없다고 호언장담한다.

전용차로 네바강을 건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발상지 표트르파벨 요새로 간다. 고요하게, 반짝이며 흘러가는 강변에서 일광욕하거나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며, 안내자가 설명하는 피터 대제의 업적과 내 사진기로는 잡히지도 않게 높은 표트르파벨 성당의 첨탑과 러시아 정교 십자가의 특징(예수님 오른쪽은 천국, 왼쪽은 지옥을 상징하는 사선으로 된 나무) 얘기를 흘려 듣는다. 점심은 정통 러시아 음식점에 가서 10명 대가족식구 옆 식탁에 앉는다.



여행계획 짜는데 가장 까다로운 것이 호텔 고르기이다. 돈 생각 않고 고르라면 문제 없지만 저렴하고 교통 좋고 깨끗하고 다음 목적지까지 염두에 둬야 해 컴퓨터에 줄줄이 나오는 호텔 설명을 읽어가며 한참 찾노라면 눈은 아프고 머리는 지끈거린다. 게다가 우리는 호텔에 대한 요구사항이 같지 않아서, 나는 그저 잠만 자면 된다는 쪽인 데 비해 남편은 집의 연장으로 생각하는지 침대 딱딱하고 조용하고 깨끗한 곳을 원해서 더 힘들다.

그런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호텔은 이 세 가지가 다 맞아 떨어졌다. 고풍스런 건물을 호텔로 개조한듯 한데, 조용하고, 교통은 도시의 최고 문화거리, 번지수 하나하나에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넵스키 대로까지 걸어서 10분이면 되고, 아침 포함 하루에 약 70달러이다. 덕분에 넵스키 대로를 뻔질나게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남편의 FITBIT에서 1만보가 넘었다는 신호가 계속 울린다.

넵스키 대로의 다양한 건축양식과 개성 있는 조각품과 시내를 그물처럼 엮고 있는 운하와 다리, 수많은 원주가 반원형으로 서 있어 보는 이를 압도하는 카잔 성당, 위풍당당한 예카테리나 여왕의 동상 등, 상트 페테르브루크가 왜 유럽 3대 문화예술 도시에 속하는지를 100% 증명하고도 남는다.

넵스키 대로 근처, 알렉산드리키 극장 앞에서 ‘백조의 호수’ 공연 포스터를 보았을 때의 놀라움과 기쁨이라니! 나는 얼른, 발레의 본거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우리가 방문하는 나흘 동안에, 챠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공연된다는 것은 행운 중 행운이며, 우리가 자유로 여행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선물이라고 남편을 설득하여 표(발코니, 1인당 3000루블)를 산다. 그리고 8시가 되어 극장 안으로 들어간 나는 화려하면서 아담한 실내와 무대, 좌우 발코니의 성장한 여인들을 구경하느라 너무 흥분했는지 중간 휴식 시간이 지나고 2부가 시작되면서 곧 잠에 곯아떨어졌다!

이곳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과 쌍벽을 이루는 최고의 미술관으로 며칠 걸려서 보아도 충분치 않은데, 본관만 보는 입장권을 인터넷에서 미리 예매한다 (성인 1인 17.95달러). 오래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 루브르박물관에 가서 그 많은 전시품을 보고나니 머릿속에 남는 것은 없고 아이들만 고생시킨 경험을 살려서 욕심부리지 말고 몇 가지만 자세히 보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박물관 입구, 이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에서부터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압도당하여 발을 떼지 못하고 두리번거린다. 고맙게도 한국어 해설 프로그램이 있어서 전화기를 들고 지정된 작품 앞에 가서 설명을 들으니 시간과 발품 둘 다 절약될 뿐 아니라 즐기고 배우기에 큰 도움이 된다.

전날 그룹 투어 도중 잠깐 스쳐 간 도스토엡스키 기념관을 다시 찾아간다 (입장료 1인당 250루블). 그가 세 들어 살던 건물의 모퉁이 아파트에는 그의 서재, 식당, 거실 등이 원형대로 있고, 석유 등잔, 촛대 등 소품들도 보존되어 있어 소설 속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길을 향해 열려 있는 유리창에서는 그가 사색하며 걷던 길과 소속했던 성당이 보인다. 그가 사망한 곳이 여기라고 하니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집필한 곳도 이곳이리라. 근처 도스토엡스키 거리에 있는 고뇌에 잠긴듯한 그의 흉상 앞에서 잠시 머문다.

러시아에서 꼭 하리라 벼르던 것이 있다. 러시아식 찜질방(반야)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지막 날, 나무를 때서 방을 데우는 100년 된 대중 반야를 찾아 나선다. 큰길에서 쑥 들어가 있고 버젓한 간판 대신 벽에 쓴 글씨의 페인트도 거의 지워진 우중충한 벽돌집 문을 열고 들어간다. 입구의 60대 여인과는 말이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 끝에 600루블을 내고, 남편은 이층으로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초등학교 강당만 한 아래층 여탕에는 긴 벤치만 줄줄이 있고 옷 넣는 캐비닛이 없다.

어찌할 줄 몰라 하고 있으니 벌거벗은 여인이 와서 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라고 한 뒤 나를 데리고 들어가서 먼저 샤워를 시킨다. 그리고는 화끈거려서 얼굴을 들기 어려운 찜질방에 데리고 들어가 5분쯤 있다가 나와서 찬물을 한 통 내 머리 위에다 끼얹져 나를 펄쩍 뛰게 만든다. 그 과정을 2번 반복한 후 벤치에 누으라고 한 뒤, 잎이 많이 달린 자작나무(birch) 가지를 물에 따끈하니 적셔서 어깨, 등, 다리를 토닥토닥 때린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자작나무 잎에서 나는 부드럽고 은근한 향내를 흠뻑 들이마신다. 안내책 소개에 의하면, 러시아 반야의 진미를 알기 위해서는 러시아인 친구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야 하며, 그렇게 제대로 하고 나면 다시 세상에 태어난 듯이 몸과 마음이 가뿐하다고 한다. 이름도 모르는 여인에게서 자작나무 가지 묶음으로 매를 맞은 나도 이 고맙고 귀한 경험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가뿐하다.



오명석, 윤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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