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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란 불능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

[인턴기자 가다] 발달장애아동가정 1박 2일 여행 동행

"불행하지 않아요. 다른 방식으로 행복합니다"

혜미 엄마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다른 엄마들도 한 마디씩 거든다. "가족 구성원 중 장애인이 있으면 불행해진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해요"

이 말을 시작으로 조금 '느릴' 뿐인 아이들 덕에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된다는 간증이 쏟아진다. 예상 외의 답변에 의아해 "어떻게 이렇게 밝으시죠?" 묻자 누군가 대답한다. "왜 어두워야 하나요?" 무의식 중 갖고 있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다.

본지 인턴기자는 지난 28~29일 한미특수교육센터(이하 센터)가 주최한 '발달장애아동가정 샌디에이고 1박2일 여행'을 동행 취재했다. 여행 한 번 제대로 가기 힘든 장애 아동 가정에게 추억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노아펀드.삼호관광이 힘을 모았고 총 13가정이 동참했다.

28일 오전 9시 대형 관광버스가 출발했다. 기착지에 멈춰설 때마다 자리가 하나 둘 채워지고 버스 안 공기는 가족의 설렘이 섞여 가벼워진다. 억지 친절도 장애에 대한 무지로 상처를 줄까 노심초사하는 사람도 없다. 낯선 존재는 기자 둘 뿐이다.

▶I love your shirt!

첫 번째 여행지는 샌디에이고 대표 관광 코스 시월드다. 가족들이 단체 티셔츠를 입고 인파를 헤치며 공원 곳곳을 누빈다. 그 와중에 "I love your shirts!(티셔츠 너무 예쁘다)"라는 찬사가 여러 번 들려온다. 티셔츠 뒷면에 쓰인 문구 때문이다.

AUTISM:Always Unique Totally Interesting Some times Mysterious(자폐:언제나 특별하고 재미로 가득하며 가끔은 신비로운)

장애를 바라보는 미국인의 부담 없는 시선과 긍정적인 제스처. 문득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아마 우리를 슬쩍 쳐다보다 티셔츠에 적힌 '자폐'라는 글자를 보고 머쓱해하며 고개를 돌렸겠지. 센터에서 활동 중인 LA교육구(LAUSD) 소속 체육 교사 케빈씨는 '인식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장애에 대한 인식은 낮지만 제도에 접근하기 쉽고 미국은 그 반대"라고 했다.

그는 미국에서 장애아동을 키우기 가장 힘든 점으로 '능동성이 요구되는 제도'를 꼽았다.

"미국에서는 장애인과 관련한 제도까지도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찾아라'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에요. 하지만 한인과 같은 이민자가 그런 사회적 혜택에 혼자서 접근하기란 쉽지 않죠."

한인만을 위한 전문 장애인 기관이 필요한 이유다. 미국 내 한인 전문 특수 교육 기관은 '한미특수교육센터'가 유일하다.

▶장애인 가정, 그 삶의 무게

자폐와 다운증후군을 모두 앓고 있는 미셸은 여행에 참여한 아동들 가운데서도 증세가 심각한 편이다. 미셸 엄마의 오른손이 아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허둥댄다. 왼쪽 어깨에는 마른 몸에 어울리지 않는 큰 가방을 짊어졌다. 왜 버스에 가방을 두고 오지 않았냐고 묻자 "우리 딸은 필요한 게 많아요"라며 웃는다.

미셸은 수년간 호스로 음식물을 섭취하다 최근 우유를 먹기 시작했다. 식사 한 번에도 필요한 도구가 많아 엄마의 가방은 늘 묵직하다. 그 무게는 미셸 엄마가 짊어져 온 삶의 무게다.

최근 엄마를 잃은 필립은 늘 멍한 표정이다. 그런 필립을 위해 할머니는 젊은 사람들이 타는 놀이기구에 망설임없이 올랐다. 지난 해 12월부터 필립을 돌보고 있다는 할머니는 딸을 잃은 슬픔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로 필립의 손을 잡아야 했다.

"여행은 커녕…그 동안 그저 먹이고 입히는데만 해도 힘에 부쳤는데 바깥 공기를 쐬니 참 좋네." 노쇠한 할머니에게도 필립에게도 이번 여행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해방의 순간이다.

▶"DisabledDifferently abled"

저녁식사 후 숙소 한 켠에서 한바탕 토론의 자리가 펼쳐졌다. 엄마들은 허심탄회하게 본인의 생각을 나눴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든지 물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힘들지 않다"다. 카일 엄마는 "Disabled는 Differently abled(장애란 불능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라고 했다.

장애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한인들의 시선이 아프다고 고백한 엄마도 있었다.

"어느 정도 아이들을 키운 우리는 그나마 '굳은 살'이 생긴 사람들이에요. 아직 어린 아동을 키우는 엄마들은 매일 아픈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겠죠."

이번 동행 취재를 계기로 한인 커뮤니티의 인식 변화를 기대하기도 했다. 글렌데일에 거주하는 제니 엄마는 "한미특수교육센터의 존재도 몰랐다"며 "각 지역 별로 장애 아동을 위한 기관.시설이 조금 더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센터 교사와의 뜨거운 토론과 고민상담이 자정 너머까지 이어졌다.

▶말 없이도 통하는 친구처럼

둘째 날 시포트 빌리지 항구 쪽을 향해 천천히 걷던 중 거리에 놓인 벤치에 엄마들이 하나 둘 앉는다. 안면이 있는 엄마들끼리 친구처럼 대화를 주고 받는 풍경 뒤로 미셸의 엄마가 홀로 앉아있다. 어제 어깨로 짊어졌던 무거운 짐이 이번엔 무릎 위에 놓였다.

전 날 스케줄이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연신 괜찮다는 말만 반복한다. 괜찮다는 말 다음으로 미셸의 엄마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은 감사와 미안이다. 미셸과 함께 샌디에이고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엄마가 소극적인 성격이라 미셸에게 더 많은 기회와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건 아닐까 미안하다.

미셸 엄마는 자폐 아동을 자녀로 둔 다른 엄마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저희끼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게 있거든요. 내성적인 편이어서 먼저 다가가지는 못하지만 센터를 통해서 발달 장애 아동을 둔 엄마들이 함께 모이면 마음이 참 편안해요" 엄마들은 자녀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친구가 된다.

수륙양용버스를 타고 샌디에이고 바다로 나갔다. 버스 가이드가 신나는 음악을 틀자 제일 뒤에 앉아있던 한별씨가 벌떡 일어서 춤을 춘다. 타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추는 춤. '다운증후군' 환자가 아니라 흥에 겨운 '한별씨'가 추는 춤이다. 그 순수함에 모두가 조금 더 즐거워진다. 전날 간담회에서 한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발달 장애 아이들이 하는 돌발 행동이요. 사실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되게 귀엽거든요. 모두가 그런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면 좋겠어요."

1박 2일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센터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가볍다. 부모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고민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한 덕분이다. 하나 둘 가족들이 버스에서 내려 떠난 뒤에도 여전히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아이에게는 좋은 친구 부모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던 한미특수교육센터의 바람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김재라.김지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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