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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 없어 추방된 미국 입양자들…한국서 길을 잃다

2000년 이전 미국 입양자 중 2만 명
양부모가 신청 안 해 시민권 없어
범죄 연루 땐 영주권 박탈돼 추방

한국말 못해 일자리 구해도 막막
고시원 전전, 편의점서 끼니 해결
"탈북자 비슷한데 정착 지원 없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무작정 여의도로 가서 2주일 정도 길에서 잤어요. 제가 유일하게 아는 한국 지명이 여의도였어요." 서울 이태원에서 만난 한호규(46.미국명 몬테 하인즈)씨가 말했다. 그는 1978년 미국에 입양됐다가 2009년에 추방됐다.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범죄로 처벌받아 영주 자격이 박탈됐기 때문이었다.

그는 현재 이태원의 한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 잠은 월세 35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잔다.

한씨는 양부모의 학대 등으로 인해 몇 번 다른 가정으로 옮겨지다 81년에 현재 가족의 일원이 됐다. 한씨는 인터뷰 중 여러 차례 LA에 있는 부모와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유는 "그들(미국인)하고 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트럭 운전기사와 경비원 등으로 일했다. 90년대에는 미군에 입대해 3년가량 복무했다. 2001년 그는 마약 소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짐을 옮겨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화물차를 몰았다. 친구가 부탁한 짐에 마약이 있었다. 나는 잘 몰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3년간 복역했다. 이후 추방 문제를 놓고 법정 싸움을 벌였으나 결국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미국 시민권이 없다는 건 언제 알았나.

"마약 소지 혐의로 경찰서에 갔을 때 처음 알았다. 양부모님들도 몰랐다고 한다. 입양 후 시민권을 받기 위한 절차를 진행했는데, 몇 가지 서류를 빠뜨려 제대로 처리가 안 됐던 것 같다."

-한국 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은.

"한국말을 못 한다는 것이다. 음식점과 물류 창고 등에서 일했지만 보수가 적고 그마저 한국말을 못해 어려운 점이 많았다.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관련 학위나 자격증이 없어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씨의 목표는 '살아남기'라고 한다. 아침.점심 식사는 편의점에서 파는 과자로 때우기 일쑤다. 그는 한국 정부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냈다. 정부에 도움을 요청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탈북자들과 비슷한 처지 아닌가. 그런데 별다른 정착 지원은 없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도 알아봤지만 수강료가 비싸 엄두를 못 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 중앙입양원을 만들고 입양인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씨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인 2009년에는 중앙입양원이 없었다.

한씨처럼 미국에 입양됐다가 추방당한 한국인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중앙입양원이 파악하고 있는 이는 6명이다. 그중 한 명은 장난감 총을 들고 은행을 털려다 붙잡혔다. 또 다른 한 명은 지난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국 시민단체인 '입양아권리캠페인(ARC)'에 따르면 50년대부터 현재까지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 출생자는 약 11만 명이다. 그중 시민권이 없는 사람이 2만 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입양 당시 양부모들이 이들의 시민권을 획득해야 하는데 일부는 몰라서, 일부는 번거롭거나 돈이 든다는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 모두가 추방당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영주권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중 절도나 마약 등 특정 범죄로 처벌받은 이가 영주 자격이 박탈돼 모국으로 쫓겨난다.

미국은 2000년에 입양아들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입양아시민권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한씨처럼 당시 이미 성인이 된 입양인들은 대상이 되지 않았다. 미국 의회에는 모든 입양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계류돼 있다. 이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면 한씨는 미국 시민권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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