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철 국제칼럼] 트럼프, G 20 그리고 글로벌 공동체의 균열
지난 7~8일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다음 두 가지 국제 상황이 확인되었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거의 ‘왕따’ 대접을 받은 사실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1면 머리기사(7월 9일)의 제목이 이를 잘 보여준다.“정상회담이 트럼프의 고립을 노출하다(Summit exposes Trump Isolation).”
다른 하나는 예측 불가능하고 고집투성이인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주장으로 ‘글로벌 공동체의 균열’이 심화하였다는 사실이다. 정상회의가 끝나는 날,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서방국가의 분열은 매우 우려할 상항에 도달했다. 이 분열을 넘기 위해서 세계화 추세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보호무역주의가 아니라 자유무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위의 두 가지 상황을 가장 적절히 구체화하는 이벤트가 바로 G20 정상회담 하루 전날에 체결한 ‘일본과 유럽연합의 경제동반자협정(JEEPA)이다. 지난 6일 일본의 아베 총리와 유럽연합(EU)의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자유무역협정(FTA)의 일종인 경제동반자협정을 체결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하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차 독일에 온 세계 지도자들 특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영국의 메이 총리를 당혹하게 하고 있다. 일본과 EU 간에 2019년 발효하기로 합의한 JEEPA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고, 이 협상이 당사자뿐 아니라 전 세계에 가져올 주요한 경제 및 정치적 영향과 의미를 검토하겠다.
우선 협정의 주요 내용을 간추려보자.
하나, 경제 규모가 2위인 EU와 4위인 일본의 경제동반자 협정 체결로 세계 무역의 37%를 자치하는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 경제권이 탄생하게 됐다. 이번 협정으로 FTA 후진국이며 ‘폐쇄 경제’라는 오명에 시달리던 일본이 양자협정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FTA를 얻게 됐고, EU도 역사상 최대 규모의 FTA를 체결하게 됐다.
둘, 일본 언론에 의하면 이번 협정이 발효하면 엄청나게 큰 수출 증가 덕분에 일본의 GDP는 연 1% 이상, EU의 GDP는 연 0.76%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측한다.
셋, 이 협정이 예상대로 2019년 발효하게 되면 일본과 EU 간의 전체 교역 품목 중 약 95%의 관세가 없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즉 일본과 EU 간 교역의 ‘자율화율’이 95%로 TPP에서 추진하던 관세 철폐율과 똑같다. 가장 중요한 관세 철폐나 축소 수혜품목은 일본의 경우 자동차와 가전제품이며, EU의 경우 농축산물 등이다. 현재 일본 자동차 수입에 대한 EU의 관세는 10%, 치즈는 29.8%이다. 자동차 수입 관세는 협정 발효 7년 후에 완전히 없애기로 합의했는데, 최근 정체에 빠진 일본의 유럽 수출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EU는 일본의 가전제품에 현재 최대 14%의 수입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즉시 관세를 철폐하고, TV에 한하여 5년에 걸쳐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와인은 양쪽 모두에서 관세가 발효 즉시 완전히 사라진다. 치즈, 파스타, 초콜릿을 포함해 거의 모든 농산물의 관세가 시차를 두고 점진적으로 철폐된다.
이번 JEEPA 협정의 최대 피해국은 어느 나라인가? 한국과 미국이다. 한국은 2013년 EU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 한국의 자동차 수출은 2009년 30만 대에서 지난해 40만 대로 증가하고 현대차의 현지 생산도 지난 6년 동안에 세 배로 늘어났다. 한국의 가전제품 수출도 타격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오래 전부터 일본에 개방 압력을 가해온 미국 농산물 분야의 대일본 수출이 심각한 경쟁력 상실로 큰 타격을 받게 되고, 미국의 자동차 분야는 EU 시장에서 일본 자동차와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한다.
세계 주요 언론에 따르면, JEEPA는 세계 경제에 큰 파문을 일으킬 것이 확실하다. 가장 강조할 사항은 유럽연합과 일본이 세계 교역의 ‘고립주의’를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을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또 하나 우려해야 할 상황은 미국이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상실하여 ‘주도권 공백’이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중국이 넘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누가 이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다. 미국이 이른 시일 안에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를 버리고 다시 자유무역의 선봉에 서기를 바란다.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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