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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일면불 월면불

박재욱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법사

"그간 편찮은 곳은 차도가 좀 있으신지요?"

천하의 마조도일(중국 8세기께)선사께서 환우가 깊어 자리보전한 지 오래. 그 절의 원주가 문안차 들렀다.

"웬만하이.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일세."

어째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도 아니고, 어렵다. 저마다 풀어 밝힌 그 뜻이 달라, 어수선하다.

해부처 달부처? 그야 선사만이 아시겠지, 누가 알겠는가. '모른다. 모른다. 모르는 마음 바로 그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던져놓고 그만 숨어 버릴거나?

도올(김용옥) 선생의 훈고학적 해석은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이르자면 "일면불 월면불 중 '낯' 면(面)자는 명사가 아니라 '바라보다'라는 동사로, 일면불은 해를 바라보는 부처, 월면불은 달을 바라보는 부처라 했다. 다듬어서, 해 뜨니 낮이요 달 떠니 밤인즉 "낮에는 해보고, 밤에는 달보고"라 그리 풀었다.

'불명경'에서 일면불의 수명은 천팔백세이고 월면불의 수명은 하루낮 하룻밤이라 했으니, 필경 그것은 장수와 단명의 상징일 터.

생사해탈한 걸림 없는 선사이며, 하루마다 여실히 '오늘'을 여여(如如)히 산 성자이고 보면, '하루를 살든 천년을 살든' 무에 대수인가. 걱정마라. '오늘 죽어도 좋고 내일 죽어도 좋다' 정도의 의미라 해도 되겠다.

아무려나 저마다의 풀이가 모두 달관한 자유인의 면목이며, 그지없이 한가로운 초탈도인의 언명이다.

하나, 범부중생에게는 실로 아득한 살림살이임에야.

근세 최고의 선승이며 '가장 승려답지 않으면서 가장 승려다운 시인'으로 칭송받는 무산 조오현 스님(1932- )마저 그 지난함을 이다지 탄식했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 '아득한 성자' 전문)

하루는 하루살이의 일생이다. 하루라는 오늘에 볼 것 다 보았다고, 영생(?)을 담보하는 알까지 까놓고 기꺼이 죽는다. 해야 할 일을 다 해 마침으로써 일생을 충만히, 하루를 천년처럼 충분히 산 하루살이는 성자다.

우리는 흘러간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경험할 수 없다. 오직 영원한 현재, 어제와 내일의 사이인 영원한 오늘, 그 하루를 살뿐이다.

하루를 살아도, 하루의 지속적 흐름일 뿐인 천년을 살아도 그저 하루살이의 한 생(生)과 진배없다. 걸어도, 달려도 이 땅에서는 한 생이다. 더러는 짧게, 더러는 조금 더 길게 살다, 이 지구별을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 억울해도 떠나야 한다.

하루를 천년어치의 근심을 품고, 천년어치의 욕망을 탐하며 미쳐 산다면, 성자는 아득할 진데.

하루를 산 것같이 산다면 부처다. 오늘이라는 이 하루를 부처로 산다면야, 오늘 죽어도 내일 죽어도 좋다. 낮에는 해보고 밤에는 달 보며 살리니.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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