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한 피란민의 아들, 대통령 돼 감격"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원 출신 로버트 러니
"67년 지났지만 그들의 모습 잊을 수 없어
문 대통령, 한·미 동맹 전통 계승해 주길
마지막 소원은 통일된 대한민국 보는 것"
"우리가 구출해낸 피란민 중에 한국 새 대통령의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감격스럽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위대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길 바랍니다. 또 한·미 동맹의 전통을 계승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길 기원합니다."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당시 1만4000명의 피란민을 살린 정원 60명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 당시 23세의 상급 선원(Staff Officer)으로 흥남 철수 작전에 참가했던 로버트 러니(89.은퇴 변호사)는 67년 전의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는 피란민을 태우기 위해 군수 물자를 포기했습니다. 피란민들 가운데는 어린 아이와 노인, 임산부들이 섞여 있었고 우리는 일가족이 흩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에게 흥남 철수 작전은 떠올릴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가슴 아프면서도 감격스러웠던 순간이다.
러니는 6·25전쟁 67주년을 앞둔 12일 뉴욕주 웨스트체스터카운티 브롱스빌에 있는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흥남 철수 작전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서술한 책 '생명의 항해' 저자인 안재철 '월드피스연합' 이사장이 마련한 자리다.
러니는 메러디스호의 부산항 도착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천 상륙 작전 당시 미군 제7사단을 태우고 6·25에 참전한 메러디스호는 같은 해 12월 15일 전투기 연료를 싣고 부산에 도착했다. 선박에 아직 하역하지 못한 300t가량의 연료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흥남 철수 작전 지원 명령이 떨어졌다. 연료를 내릴 시간도 없이 메러디스호는 흥남으로 떠났고 12월 22일 흥남에 도착했을 때 부두 전체는 10만 여명의 중공군에 포위된 상태였다. 퇴로는 해상밖에 없었고 피란민 3만~4만 여명이 부두에 몰려 있었다.
미군 제3사단장으로부터 피란민을 태우고 퇴각할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 레너드 라루 선장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때부터 피란민을 메러디스호에 태우는 작업이 시작됐다. 흥남 부두가 이미 다른 선박으로 가득차 있어 부두에 정박하지 못한 메러디스호는 피란민들을 태우기 위해 나무로 다리를 놓았다. 그 생명의 다리 위를 1만4000명의 피란민이 건너 배에 올랐다.
흥남 부두를 떠난 메러디스호는 12월 24일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이미 피란민들로 가득찬 부산항에 입항하지 못하고 거제도로 배를 돌렸다. 성탄절인 25일 거제도에 도착한 메러디스호에서 피란민들이 차례로 내렸다.
러니는 "그들은 육지에 내리면서 메러디스호를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50여 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8년 은퇴
그렇게 흥남 부두를 탈출한 피란민들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아버지 문용형씨과 어머니 강한옥씨, 그리고 누나가 있었다. 문 대통령은 가족이 거제도에 도착하고 3년 후인 1953년 1월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에서 태어났다.
러니는 "문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미주 한인들이 미국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그들의 자녀들이 얼마나 우수한 인재로 성장하고 있는지, 그들이 미국의 경제 발전에 얼마나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새 대통령에게 말해주고 싶다. 끝으로 내가 살아 있을 때 통일된 한반도의 모습을 보고 싶다"며 말을 맺었다.
한편 6·25전쟁의 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러니는 1953년 코넬 법대에 진학했으며 55년부터 50여 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다 지난 2008년 은퇴하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감동적 스토리를 전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최수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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