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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노예 생활인 줄도 모르고 한국 떠나…"

육성으로 듣는 미주 한인 초기 이민사:외로운 여정(61)
유카탄 노예 생활과 조국 독립 염원 박호세(상)

애니깽 할당량 1500개 따려
새벽부터 해질때까지 작업
도망치다 주인에게 잡혀
가시밭에 누워 곤장 맞기도


박호세(Jose Sanchez Park)가 68세 때 멕시코 한인 이주사에 대해 정리했던 내용을 요약하여 싣는다. 이 글은 최애영이 2004년 스패니시를 영어로 번역한 내용이다.

1905년 2월, 1033명의 한국인들이 인천에서 배를 타고 항해를 시작했다. 그들은 75일 동안 거친 파도와 싸우는 고되고 긴 여정 끝에 1905년 4월에 멕시코 유카탄의 살리나 크루즈에 도착했다. 그들 중에는 양반 출신도 있었고, 거지도 있었고, 각양각색의 한국인들이 한국에서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찾아서 먼 곳까지 항해해 온 것이었다. 멕시코 메리다 지역의 애니깽(에네켄) 농장 주인들이 한국에서 노동자들을 모집해 보내라는 부탁을 받은 후, 독일인, 일본인, 한국인 모집원을 고용해 노동자들을 뽑았다. 모집원은 40세 이하 건강한 신체의 사람들을 골라 뽑았다. 또한 부인과 15세 이상의 아이들도 포함시켰다. 몇 달에 걸쳐 노동자들이 모집되었고, 일부 노동자들은 자격 미달로 탈락했다.

한인 노동자들은 멕시코에서 반노예 생활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문서상으로는 계약 노동자 신분으로 멕시코에 왔으나, 그들은 사실 반노예 신분이었다.



도착 후 아무것도 받지 못한 채 빈손으로, 소처럼 만원 기차에 실려 22개의 농장으로 각기 보내졌다. 임시 오두막이 그들의 숙소였고 수돗물 시설이 없어 큰 농장은 여러 군데 우물을 파서 식수로 이용하고 농사에 필요한 물을 끌어 썼다. 그러나 조그만 농장은 우물 한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했다.

한인 노동자들은 생소한 언어와 문화, 음식에 적응하느라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커피가 무엇인지 모르는 한인들은 멕시칸들이 자신들에게는 원두커피에서 내린 물만 주고 원두는 도로 가져간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맨바닥에서 잠을 자다 나중에 나무로 된 침상을 만들어 그 위에서 잘 수 있었다. 농장 상점에서 물건을 사려면 손짓, 발짓으로 소통해야 했다.

하루의 일과는 새벽 6시 종이 울리면서 시작되었다. 종소리는 농장으로 나오라는 신호였다. 모두 줄을 서서 연장을 받아 애니깽 나무를 자르는 힘들고 고된 일을 했다. 농장주들은 한인 노예들에게 처음 2시간 동안의 노동에는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그런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한인들에게는 무척 힘든 작업이었다.

그러나 한인들은 열심히 일하여 원주민들과 비슷한 수준이 되려고 노력했다.

한인 노예들에게는 하루 30개의 애니깽 롤을 생산하라는 할당량이 주어졌다. 한 개의 롤은 50개의 애니깽 나뭇잎을 의미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애니깽 나무를 아주 조심히 다루고 정확하게 잘라야 했다. 애니깽 나무에는 평균 50~100개의 잎이 달려있는데, 그중 자를 수 있는 잎은 4~12개에 불과했다. 어떤 때는 50개가 안 되는 분량의 애니깽 나뭇잎으로 한 개의 롤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것이 적발되면 심한 채찍질을 받아야 했다. 애니깽 잎에는 가시가 있어 자르다 상처가 나고 멍이 들기가 일쑤였다. 수확된 애니깽 잎을 또다시 등짐을 지거나 소에 실어 운반해야 했다. 하루에 정해진 30개 애니깽 롤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고된 작업을 지속했다. 일요일에도 쉴 수 없었다. 여자들은 애니깽 잎의 가시를 제거하고 운반하는 일을 했다. 이렇게 고된 하루의 일과는 보스가 끝났다는 신호를 보낼 때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아이들을 포함해서 온 가족이 농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갓난아이들을 뜨거운 햇볕에서 보호하기 위해 애니깽 나뭇잎으로 그늘을 만들었고 좀 큰 아이들이 갓난아이들을 돌보았다. 공덕원은 당시 3개월의 갓난아이였는데 농장에는 모기, 뱀, 독거미들이 득실거렸다. 매니저가 하루 수확량을 기록했다가 계약대로 빚을 공제하고 토요일에 일주일 임금을 주었다.

설탕과 소금은 배급 품목이었고, 쌀 대신 옥수수를 받았다. 한국인들은 옥수수를 먹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 심한 배탈을 겪기도 했으나, 점차 서서히 적응할 수 있었다. 현지에서 생산되는 채소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는 지혜를 터득했고, 농장주들이 버리는 배춧잎 등으로 김치를 담그기도 했다. 또한 한인들은 긴팔의 옷과 바지를 직접 만들어서 입었다. 애니깽 잎 가시와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온몸을 덮는 옷을 만들어 입은 것이었다. 그러다 누군가 장갑을 만들어 껴서 손을 보호하자는 제안을 했고, 그렇게 손수 만든 장갑으로 손을 보호하면서 작업을 하니 젊고 건강한 청년들은 원주민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농장에서는 약품을 구하는 것도 매우 힘들었다. 한인들은 한국에서 가지고 온 한약재로 병을 고치곤 했는데, 농장에서 약품을 구하지 않으니 원주민들이 한국인들은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일 년 반이 지난 후 첸제 농장에서 일하던 한국인이 도망치다가 붙잡힌 사건이 발생했다. 농장 감독관이 그의 바지를 벗기고 가시가 돋친 애니깽 나뭇잎에 눕게 한 후 곤장을 수 없이 쳤다. 동료 노동자들은 그의 상처가 곪지 않도록 소금과 오렌지를 발라주었다. 이러한 소식이 순식간에 한인 노동자 사이에 퍼졌고, 화가 난 한인 노동자들이 나무 막대와 돌 등을 들고 농장 감독과 농장주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농장 감독은 급히 팬티만 입고 도망쳤다. 한인 노동자들은 문을 부수고 들어가 심한 부상을 당한 동료 한인을 구출하고, 그의 상처를 치료했다. 다음날 한인 노동자들은 일을 거부했고, 감독관이 도망갔으므로, 그들에게 일하라고 명령을 내릴 사람도 없었다.

여자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남자들은 앞으로 이 일이 어떻게 처리될지 듣기 위해 기다렸다. 오후에 농장 주인이 와서 한인 노동자들로부터 상황 설명을 들었으나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다시 일하러 나가라고 명령할 뿐이었다. 그후 한인 노동자들은 도망칠 생각을 하지는 않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한인 노동자들의 저항 소식이 다른 농장에도 널리 퍼졌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농장주들은 한인 노동자들에게 계약 노동 기간이 언제 끝나는지 알려주었다. 그러나 계약이 만료되면 더 이상 농장에 머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인 노동자들이 현지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익숙해졌을 즈음이었다.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막막했다. 스패니시 언어에 능숙하지 않았고, 다른 지역으로 가본 경험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인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메리다로 이주했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일부 한인들은 직업 알선사가 되었다. 그들을 통해 대부분의 한인들은 또다시 애니깽 농장에 1년 단위로 취업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미 한인 노동자들은 농장에 남아 일을 계속하거나 다른 일에 종사할 수 있거나 하는 선택이 가능해졌다. 또한 직업 알선사끼리 일을 보다 잘하는 사람들을 모집해야 하는 경쟁이 붙으면서 한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도 점차 개선되었다. 약 200여 명의 한인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서 각각 농부, 어부, 상인 등으로 일하면서 살게 되었다. 또한 일부는 도시로 이주하여 세탁소, 식당, 도박장, 그리고 약국 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시로 이주한 한인들은 주로 중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과 한약방을 이용했다. 처음에 중국 상인들이 한인들이 중국어를 구사하는 줄 알고 중국어로 대화하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스패니시로도 의사 소통이 불가능하자, 결국 한문을 써가며 서로 소통하게 되었다.

이경원 저·장태한 역
'외로운 여정'에서 전재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 제공
정리= 장병희 기자

◆책구입: hotdea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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