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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호ㆍ이승우, 5년뒤 성인 월드컵서 큰일 낼 인재들"

'U-20 대표팀 주역' 백승호.이승우 스승 강경수 감독

백, 재능 좋고 마음도 잘 다스려
이, 쇼맨십으로 기 꺾는 여우
신체 장점보다 기본에 충실해야
학부모와 다투면서도 원칙 지켜


"승호와 승우는 이미 제가 평가할 레벨을 넘어섰어요. 세계적인 지도자들에게서 배웠으니까 오히려 제가 걔들한테 좋은 얘기 들어야죠. 5년뒤엔 카타르 성인 월드컵에서 큰일을 저지를 것입니다. 그저 경기장 구석에서 '녀석들아 다치지 말고 잘 해라'고 응원할 뿐이지요."

강경수(52) 감독은 백승호(20.바르셀로나B)와 이승우(19.바르셀로나 후베닐A)의 은사다. 강 감독이 창단하고 20년간 이끈 서울 대동초에서 둘은 축구를 배웠다. 두 선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한국서 열리고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둘은 나란히 2경기 연속 골을 터뜨리며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신태용 감독이 지휘하는 U-20 대표팀은 승.승 브라더스 덕분에 높은 인기를 얻었다.

아마추어 축구의 산실인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최근 강 감독을 만났다. 그는 "이제 학교를 그만뒀으니 전직 감독이라고 불러 주세요"라며 힘없이 웃었다. 2008년 장애 4급 판정을 받은 그는 근육 신경이 마비되는 '케네디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결국 올해 초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대동초 축구부를 떠나기로 했다. 손가락이 떨리고 걸음걸이도 자연스럽지 않지만 그는 제자들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밝아졌다. "승호는 묵직한 축구천재고 승우는 영원한 축구신동"이라고 강 감독은 제자들을 한마디로 정의했다.

김포 이회택 축구교실에서 이름을 날리던 백승호는 4학년 때 대동초로 왔다. "그때는 정말 작았어요. 근데 이 조그만 녀석이 다 갖춘 겁니다. 오른발.왼발.스피드.지구력에 헤딩까지. 거기다 골키퍼도 했어요. 승부차기 직전에 골키퍼로 넣으면 2~3개는 꼭 잡아냈어요. 운동신경.센스.지능이 남달랐죠."

그런데 강 감독은 백승호의 천재성을 능력보다는 태도와 자세에서 찾았다. "지고 있다고 흥분하거나 이기고 있다고 들떠서 장난치는 게 없어요. 운동장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항상 똑같아요. 골 넣어도 별로 기뻐하지도 않고 세리머니도 담담하게 했어요. 상대 진영에서 공격하다 공을 뺏기면 우리 골대 앞까지 뛰어와서 기어이 공을 뺏어낼 만큼 근성도 있었죠. 어린 녀석이 그 정도로 마음을 다스릴 줄 아니 그게 천재 아닙니까."

그런 천재에게 뭘 가르쳤냐고 물었다. 강 감독은 "그냥 관리만 해 준 거죠. 팀 플레이의 기본을 알려 주고 '그렇게 드리블 하는 것도 좋지만 동료를 활용해서 패스 플레이를 하면 덜 다치고 더 쉽게 할 수 있어' 정도로 얘기해 준 거죠"라고 말했다.

백승호는 6학년 때 바르셀로나에 가서 그곳 유소년 클럽과 교류전을 치렀다. 당시 바르셀로나 스카우트가 "한국에 이런 굉장한 선수가 있느냐"며 그를 따로 불러 며칠간 테스트를 했다. 그리고 1년 뒤 백승호는 세계 최고 클럽 FC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선수가 됐다.

이승우는 4학년 때 대동초로 와서 백승호의 1년 후배가 됐다. 강 감독은 "승우는 원래부터 좀 튀었어요. 플레이에 자신감이 넘쳤고 머리도 좋았어요. 세리머니를 요란하게 하는 것도 심리적으로 상대를 더 힘들게 만들려고 그러는 거였죠"라고 회고했다. 이승우도 6학년 때 남아공에서 열린 다농컵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에 출전했다. "유럽 프로팀 스카우트와 에이전트 80명 정도가 승우만 따라다녔어요. 조그만 동양 애가 공도 잘 차고 쇼맨십도 있으니까 눈길을 끈 거죠. 승부차기를 할 때 수십 미터 밖에서 100m 전력질주 하듯 달려와서 골키퍼 정면을 향해 냅다 공을 질렀어요. 골키퍼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릴 정도였죠. 사람들 보라고 일부러 그렇게 한 겁니다."

다농컵 홍보대사였던 지네딘 지단이 극찬했던 이승우는 그렇게 유럽 팀에 자신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2년 뒤에 백승호의 뒤를 이어 바르셀로나로 날아가게 된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있는 대동초에는 전국대회 우승 트로피가 30개나 있다. 지난해 초등학교 왕중왕전 우승도 대동초였다. 작은 대회까지 합치면 100번 넘게 우승했다. 신영록.석현준.임상협.김영욱 등이 대동초에서 국가대표의 꿈을 키웠다.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우승하고 좋은 선수를 줄줄이 내는 비결이 뭔지 궁금해 한다. 강 감독은 기본에 충실한 것이라고 했다. "축구 선수는 축구 잘하는 게 1순위죠. 그런데 우리 초등학교에서는 신체적 장점을 더 중시한 게 사실이거든요."

여기에는 한국 초등학교 축구부의 슬픈 현실이 묻어 있다. 초등학교 지도자의 급여는 학부모 주머니에서 나온다. 그러니 학부모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성적에 집착하게 된다. 성적을 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크고 빠르고 힘 좋은 아이를 전방에 박아 놓고 '뻥 축구'를 하는 것이다. 강 감독은 그걸 타파하기 위해 노력했고 학부모들과 멱살잡이를 하면서까지도 이 원칙을 꺾지 않았다.

강 감독은 축구 명문 경신중.고와 한양대를 나왔고 '준 국가대표'라는 대우 로얄즈에서 공격수로 뛰었다. 부상으로 일찍 선수 생활을 접은 뒤 개인 사업을 하다 생각지도 않게 아이들 축구판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영등포구가 일본 자매결연 지역과 유소년 축구 교류전을 했는데 판판이 깨지는 겁니다. 1998년에 지인이 대회 나갈 애들을 좀 봐 달라고 해서 가 보니 뛸 만한 선수가 세 명밖에 없어요. 급히 애들을 끌어모아 며칠 연습시킨 뒤 나갔는데 크게 이긴 겁니다. 그걸 계기로 아예 축구부를 만들자고 해서 대동초 축구부가 생긴 거죠."


정영재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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