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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무신론자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다 보면 자기의 의사와는 무관한 일이 일어나는 일이 종종 있다. 문자 메시지의 글자를 잘못 입력하고 메시지를 전송하고 나서 깨닫는 일은 늘 겪는 일이다. 오타(誤打)뿐 아니라 잘못된 엉뚱한 사진을 보내거나 수취인을 착각하는 일도 있다. 세상 빨라지고 편해졌다고 하지만 손가락의 순간적인 실수가 황당하고 난처한 일을 일으키는 일이 생긴다. 손으로 직접 편지를 쓰고 사진을 잘 싸서 봉투에 넣어 우체통에 넣던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던 일이다. 때로는 일이 커져서 사태가 돌이키기 힘든 곤란한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잘못 보낸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받고 보이는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야 너 누구야?” 하거나 “야 번호 제대로 확인하고 보내.” 하는 반말지거리가 있는가 하면 “남의 집 방문하셨네요. 번지를 잘못 찾으셨군요.” 하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응답도 있다. 곧바로 전화를 걸어 막말을 하고 심한 욕을 해대는 몰상식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K는 나의 죽마고우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같은 학교를 다녔고 대학도 같은 대학을 다녔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우리는 한 동네 살았다. 아침에 함께 등교하기도 하고 그의 집은 정원이 큰 집이어서 방과 후에는 그의 집에서 자주 어울리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고 내가 한국을 떠난 후에는 자연 소원해졌지만 햇수로만 따지면 우리는 60년 지기도 더 된다. 몇해 전 스마트폰과 컴퓨터라는 현대 문명의 이기는 태평양을 사이에 둔 우리를 지근거리로 다시 접근시켜 주었다. 우리는 마치 그동안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자주 카톡으로 옛 우정을 되새겼다.

작년 어느날 K가 보낸 일련의 문자메시지가 내 휴대폰 스크린을 채웠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재차 읽어보고 그가 잘못 보낸 문자임을 알게 되었다. K가 자기 교회의 교우와 나눈 일련의 대화였는데 그 요지는 K가 자기가 아는 한 친구의 영혼을 구제하고 싶다는 것이고 그에 대해 자문을 구한 것이었다. K 가 구제하고 싶은 영혼이 나를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이 앞뒤 문맥으로 확실해졌다. 갑자기 하늩에서 날벼락이 떨어진 것 같았다. 이게 무슨 망발인가. 내가 영혼을 구제받아야 할 무슨 사악한 일이라도 저질렀단 말인가. 하도 황당한 일이라 나는 속으로 “이 놈이 치매 걸린 것 아냐” 했다.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러운 중에 얼마 안 있어서 그에게서 매우 긴 문자가 왔다. 자기가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질렀다며 용서를 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가던 K는 독실한 개신교 가정에서 자랐다. 우리가 다니던 대학은 미션 스쿨이었고 일주일에 한번씩 채플시간도 있었고 종교 과목 학점도 필수였다. 내가 종교에 무관심한 것을 그는 그때 알고 있었고 반 세기도 훨씬 지나간 지금까지도 그대로인 줄 속단한 것이다. 그가 그의 교우와 나눈 대화 중에 나는 무신론자로 낙인 찍혀 있었다. 미국에 온 후에 내가 뒤늦게 영세받고 천주교 신자가 된 사실을 그는 알 턱이 없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실 확인도 없이 그리고 내 배후에서 멀쩡한 사람의 영혼 구제 운운한 것은 내 심기를 몹시 뒤틀리게 했다. 나는 그의 장황한 메시지를 삭제해 버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반년이 훌쩍 지났다. 며칠 전 K를 잘 아는 한국에 있는 가까운 친구가 K에게서 받았다는 카톡 문자를 내게 전달해 왔다. “무신론자인 줄 잘못 알고 전문가인 선교사에게 전도의 지혜를 구하는 카톡 내용을 잘못 찍어 보냈어. 좋은 뜻이었으니까 언젠가는 이해해 주겠지.” “나야 뭐 용서를 받을 처지니까…. 안타까운 대로 잠잠히 기다려야지.ㅠㅠㅠㅠㅠ”

나는 즉시 K에게 카톡을 치면서 반년 전에 그가 실수했다고 사과했을 때 그냥 호탕하게 웃어넘기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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