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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시끄러운 중도'가 필요하다

김환영 / 논설위원

우리는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이 각각 두 차례 연이어 집권을 했었다. 집권당이 대략 한 번은 더 대선에서 승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례적인 일이 발생하면 5년 만에도 바뀌겠지만 대과(大過)만 없으면 그렇다. 미국하고 비슷하게 가고 있다.

우리 정치가 미국 정치를 닮아가는 것은 어쩌면 '사대주의' 때문이다. '사대주의'를 현대화시켜 '친패권주의'라고 불러도 되겠다. 물론 국가 주권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패권은 극복 대상이다. 사대주의·친패권주의가 반드시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한·미 양국 정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데자뷔(deja-vu)를 느끼게 한다. '샤이(shy) 트럼프'에 이어 '샤이 홍준표' '샤이 안철수' 얘기가 나왔다.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가 침묵하는 유권자로 진화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탄핵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양국 정치가 직면하고 있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는 '정치 양극화'다. 우리 매체 기사들에 달린 댓글을 보면 '저쪽 찍는 집안과는 절대 사돈 안 맺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샨토 아이옌거 스탠퍼드 정치학과 교수는 '공화당·민주당 며느리·사위는 집안에 들이는 게 싫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학계와 매체들은 흔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미국을 거대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로 만든 주범으로 지목한다. '제2의 트럼프'나 '한국판 트럼프'는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 양극화는 한·미 양국에서 구조적인 문제가 됐다.

정치 양극화의 결과로 미국 공화·민주 양당 내부의 중도파는 씨가 말랐다. 미 하원의원을 선출하는 435곳 선거구 중에서 양당 후보 모두 승산이 있는 접전 지역은 72개 선거구로 줄었다.

정치 양극화의 해법은 간단할 수도 있다. 롭 밀러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감정이입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으로 정치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선 끝나고 나니 페친 끊겼다'는 말이 이번이 아니라 2012년 선거에서 이미 나왔다. 이번 대선에서도 같은 체험을 한 SNS 사용자가 많을 것이다. 편식과 마찬가지로 '유유상종 SNS 생활'은 결코 좋지 않다.

구조적인 차원에서는 양극을 삼극으로 복원해야 한다. 중도파는 중도좌파·중도파·중도우파의 공통분모다. 각 정당에 중도가 많아야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가능하다. 정치인들에게 선거 당선은 생명과도 같다. 강경파가 되는 게 당선에 유리하니까 강경파가 된다. '막말'이 정치생명 연장에 도움이 되니까 '막말'을 한다. 저쪽 욕을 먹어도 대세에 지장 없다. 지지자들이 환호한다. 온건·중도파가 되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다. '가는 말이 험해야 오는 말이 곱다'가 농담이 아니라 생존의 비결이 된 것은 아닐까.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치적 목소리 총량의 법칙' 같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 양극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시끄럽기에 밀려난 중도파들은 조용하다. SNS 공간에서도 치우치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중도파 댓글러는 소수다. 학자들은 중도파의 정치 무관심과 침묵도 정치 양극화에 일조한다고 주장한다.

한 가지 반전이 있다. 미국에서 다른 당 찍는 며느리·사위가 집안에 들어오는 게 꺼려진다는 응답자는, 민주당 지지자의 경우 15%, 공화당 지지자는 17%다. 정치 양극화가 회생불능 수준은 아닌 것이다. 언론이나 학계나 과장하는 성향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좀 더 시끄러운 중도다. 선거 때마다 투표하라고 모든 정파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선거와 선거 사이에도 중도의 목소리가 시끄러워야 사회가 활력 있고 건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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