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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골목길과 주님의 길

한성윤 목사/ 나성남포교회

처음 탔던 비행기가 미국행이었고 내린 곳이 나성이라 그런지 이곳 풍경이 정답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곳에 온 이후에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따가울 만큼 아픈 햇볕과 프리웨이입니다. 내리는 출구가 2~3마일마다 있던 고속도로가 톨게이트조차 없다는 것에 정말 어리둥절했습니다.

지금은 온종일 차이가 없어진 교통체증 때문에 놀라고 익숙해지지 않지만, 당시는 그 넓은 길에 그 많은 차가 서로 모두 다르다는 것이 놀람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누구에게나 찾아오던 향수병에 가슴을 조일 때, 엉뚱하게도 제일 눈앞에 어른거리던 것은 두 사람도 어깨를 붙이면 같이 가기 힘들었던 골목길이었습니다. 처마와 처마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굴뚝이 굴뚝으로 이어져 가던 길. 자동차까지 다니는 큰길(?) 옆에서 담장도 없이 살다 보니 무슨 호강병인가 하며 다독거렸습니다.

그러면서 집 생각에 괜히 밖으로 나와 밤길을 걷다 보니 한숨이 나오고 겨울이라 그런지 입김도 함께 나왔습니다. 문득 내 옆에 담장이 없어서 외로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툭 터진 큰길은 내 한숨도 내 입김도 따뜻하게 잡아주지 못했습니다. 막힌 곳이 하나 없어 모두 바람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내 입김도 그리고 마음도 도망가지 못하게 묶어주었던 허연 시멘트 담장들이 이어졌던 골목길이 그래서 그리웠나 봅니다.

골목길에는 숨바꼭질하다 잠들었던 굴뚝이 있고, 구슬치기하던 구멍들이 패어있고, 공기놀이하려고 모아둔 조그맣지만 반들대던 돌들, 그리고 어른들한테 길에서 뭐하느냐고 혼나면서 펼쳐놓았던 딱지 판이 있었습니다. 혼이 나면서도 속으로 항상 생각했습니다. '이 길은 우리 길이다' 이곳의 왕초인 골목대장이 엄연히 있었고 우리는 그 부하였으니 말입니다.

한때는 담장과 벽들이 이웃을 가로막고 서로를 멀게 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담장들이 만들었던 골목길이 오히려 외로움을 달래주고 서로를 이어주었던 것입니다. 넓고 편안한 길을 오늘도 걸으면서 괜히 골목길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지루할 수 있던 하루를 같이 놀아주고, 싸우고 티격태격하던 우리를 감싸주고 즐거움도 상처도 담장에 묻어주며 함께 살던 좁은 길 말입니다. 엉뚱하지만 주님이 내가 곧 길이라고 하셨을 때 그 길은 분명 골목길일 거야라고 웃어봅니다. 넓은 길이야 없지만, 무엇보다도 골목길은 대장이 있으니까요.

sunghan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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