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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폭동 25주년] '지상 기념관'

4·29폭동 25주년, 4반세기를 맞아 본지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인 신채호 선생의 말을 화두로 잡았다. 주류 언론의 편향성 보도의 문제점을 시작으로, 당시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려 애쓰는 피해 한인, 25년간 잘못된 한인사회의 인식, 당시 한인구호단체의 문제점, 2세 자녀들의 기억을 담은 책 저술 등을 실었다. 그리고 마지막 편은 '한줌의 기억을 담을 한평의 박물관도 없다'는 부끄러운 후회를 조금이라도 만회하는 차원에서, 25년 전 폭동의 아픈 모습과 한인사회를 지키려 애쓴 사람을 신문에 게재하기로 했다. 이른바 '지면 기념관'. 신문의 존재 목적과 가치는 매우 다양하지만, 역사의 사료를 보관한다는 기능도 크다.

4회 연속 시리즈 기사 최종편은 그날의 모습과 그때 그 사람을 담았다.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4·29 폭동 그때 그 사람
온몸·열정으로…법률·대변자로
고 이재성·강종민, 안젤라 오


1992년 4·29 폭동 당시 한인사회를 지키고 대변하려 했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4·29 폭동은 한인사회에 아픈 상처를 남겼고 '이재성'이라는 안타까운 이름을 남겼다. 고 이재성(당시 19세)군은 샌타모니카칼리지에 다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는 1992년 4월 29일 밤부터 폭동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LA한인타운 자율방범대를 자청한 한인청년단(단장 강종민)을 지원했다.

이재성군은 한인청년단과 한인타운 업소 방어를 지원하러 나섰다가 30일 오후 11시쯤 총격을 당해 숨진다. 이군과 함께 차를 탔던 제임스 강(18)군도 총상을 입었다. 두 사람은 폭도로 오인돼 한인 업소 측에서 쏜 총에 맞은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재성군은 폭동 당시 유일한 한인 희생자(부상 46명)이다. 다음날 로드니 킹은 방송을 자청해 "이군이 총에 맞아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폭동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자제를 호소했다.

이후 한인사회는 이재성군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3만1500달러를 모금해 흉상 건립에 나섰다. 하지만 흉상은 성금 집행 분란으로 4년 뒤에야 제작이 완료됐다. 4·29 박물관 사업마저 무산되자 LA한인청년단을 꾸렸던 초대 단장 고 강종민씨는 개인 사무실에 죽을 때까지 보관했다.

강종민씨 사후 이군 부모인 이영희·이정희씨가 강씨 사무실을 찾아 아들의 흉상과 사진을 집으로 가져갔다. 이군 부모는 2007년 4월 4·29 폭동 15주기를 맞아 아들 이름으로 10만 달러 장학금을 나성영락교회에 기탁했다.

4·29 폭동 발발 6개월 전 한인청년 강종민·김치현·김성식 등은 한인타운 지킴이를 자청하며 '한인청년단'을 결성했다. 폭동이 발발하자 청년단원 50여 명은 총기와 각목을 들고 LA한인타운 업소 방어에 나섰다. 이들은 한인타운 수비대로 업소를 약탈하고 총격을 가하는 폭도에 맞섰다. 총격전은 4~5차례 발생했다.

이후 초대 단장 강종민씨는 사우스LA 스와밋 가게를 운영하고 미주한인사업가협회도 이끌었다. 2014년 8월 7일 암투병 끝에 5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강씨는 생전 폭동 피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재성군의 희생을 자기 탓인 양 아파하던 그는 "이재성군 흉상을 설치하려고 시정부 관계자, 한인단체들과 접촉해도 모두 거절했다. 폭동으로 숨지거나 피해당한 이들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안젤라 오씨는 1986년 LA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4·29 폭동 당시 안젤라 오 변호사는 주류사회에 한인사회의 피해와 억울함을 알리는 대변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오 변호사는 당시 ABC나이트라인 프로에 출연해 "LA폭동은 '흑백갈등'의 문제인데 언론은 '한흑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라며 폭동 인과관계와 한인사회 피해를 주류 언론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오 변호사는 폭동 이후에도 한인이민자 권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 법적 피해를 당한 한인을 돕는 '법률클리닉'을 운영했다. 한미연합회(KAC)이사로 4·29분쟁조정센터 등을 지원했고, 지금은 민족학교 이사로 활동한다. 2006년 아시안아메리칸언론인협회(AAJA)는 안젤라 오 변호사에게 공로상을 수여했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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