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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때와 같은 실수 되풀이 하지 말아야죠"

[주목! Biz 맨] 액티브 USA 돈 이 회장
폭동 당시 한인 의류업체 최대 피해
지금도 정치력 부족으로 자바시장 내밀려
2세 참여로 '패션 실리콘밸리' 만들어야

"지금은 그래도 집사람하고 포도주 한 잔 기울일 정도는 돼요. 25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름대로 극복도 했고 그만큼 담담해 졌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LA 자바시장에서 대형 의류도매기업, 액티브 USA를 경영하는 돈 이 회장의 시선은 어느 새 25년 전 아픔을 떠올리며 회상에 젖었다. 이민와서 5년 동안 낮밤 없이 일을 하며 힘겹게 장만한 의류공장이 폭도들에 의해 전소가 됐으니, 아픈 기억이 왜 크지 않았을까. 더구나, 4·29 폭동 당시 한인 의류업체가 입은 피해로는 가장 규모가 컸고, 유일하다시피 했으니 실망감 또한 대단했을 것이다.

"역사가 기록하는 당시 한인 피해의 시작은 1992년 4월 29일 입니다. 하지만 이미 하루 전부터 전조가 있었어요. 한인 라디오에서도 분위기가 심상찮다며 사업체에서 일찍 귀가할 것을 수시로 당부하고 있었죠. '혹시나' 싶어 서둘러 직원들을 퇴근시키고 오후 2시께 일찌감치 공장을 떠났지요."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애지중지 키워 온 사업체가 화염에 휩싸인 것을 TV를 통해 보게 될 줄을 이 회장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모든 게 잿더미로 변했어요. 100만 달러짜리 공장도, 건물 안에 있던 수 백만 달러어치의 원단과 옷, 기계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TV를 보면서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었죠."

다운타운 메인과 31가에 있던 이 회장의 공장은 폭동이 본격화하기도 전에 이미 큰 피해를 봤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이 회장은 이후 6개월 동안은 매일 같이 술로 지냈다고 했다. "매일 고통스러워 하는 저를 보고 아내가 다시 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주변에서 크고 작은 도움을 주지 않았으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싶네요."

이 회장이 재기를 하는 데는 고마운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만큼 자바시장에서 쌓은 신뢰와 성실한 세금보고, 만일에 대비한 보험가입이 큰 힘이 됐다. "애들 돌 사진이나 가족사진첩까지 모두 불에 타버린 다음이라 거래처 외상값이 어떻게 되는지도 증명할 길이 없었어요. 그런데, 거래를 하던 업체에서 먼저, 외상값이라고 주고, 어떤 사람은 격려 편지와 함께 500달러, 1000달러가 든 봉투를 건네주기도 했어요.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통해서는 30년 간 4%대 이자로 50만 달러를 지원받을 수도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세금보고를 제대로 하는 경우가 드물었기에 피해를 보고도 융자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았지요."

이 회장은 폭동의 어려움을 딛고 지금은 다운타운 피코길에 6만 스퀘어피트 규모의 2층 단독 쇼룸(액티브 피코쇼룸)를 가진 업체로 성장시켰다. 액티브 피코 쇼룸을 올해 LA비즈니스저널로부터 가장 주목받는 건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폭동을 겪고 재기에 몸부림치던 시간을 되새기던 이 회장의 이야기는 지금의 자바시장으로 돌아왔다. 사반세기의 간극이 있지만, 요즘 자바시장 한인업체들이 겪는 어려움이 당시의 고통과 오버랩된 탓인 듯 했다.

"다운타운 자바시장은 지금 너나없이 모두 힘들어요. 3년 전 수사당국이 대대적인 돈세탁 수사를 한 후로 중남미 고객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요.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과 노동법 단속 강화로 봉제공장들은 LA를 떠나고 있습니다. 자바 한인업체 물건을 사주던 베베, 웻실, BCBG 등 우호세력들은 자라나 H&M, 유니클로 등에 밀려 궤멸한 상태예요. LA시 정부가 다운타운 변화를 위한 장기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한 때 의류의 메카라는 자바시장은 기로에 서 있어요."

이 회장은 자바시장의 어려움이 패션경기의 부진 탓이 크지만 한인 업주들의 대비도 부족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패션유통의 혁명적 변화에 대처가 부족했고 한인 정치력 신장에 대한 이해 등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자바시장은 지난 30년 넘게 승승장구했어요. 물건만 만들면 얼마든지 판로는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온라인 상거래를 지배하는 아마존이 패션브랜드까지 만들어 유통을 하는 마당이니, 대응하기도 힘든 상황이지요. 다운타운의 개발정책으로 자바의 소매업체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밀려나고 있기도 하고요. 4·29 때 한인 커뮤니티는 정치력 부족으로 피해를 막지도 못했고, 피해 보상을 위한 하소연조차 제대로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자바는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고 있어요."

이 회장은 한인사회가 4·29의 상처를 딛고 일어섰던 것처럼, 한인 자바시장도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며 자신의 생각을 꺼내 놓았다. 큰 변화의 흐름 속에 30년 전과 같은 자바시장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의류의 메카라는 자존심을 되찾는 노력을 한다면 후세들에게는 발전된 자바시장을 넘겨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해답을 2세 경영인, 젊은 정치인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류사업에 필요한 영역을 기획, 생산, 관리, 마케팅, 세일즈로 볼 수 있는데, 1세대들이 강점이 있는 것과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2세들의 독창적 기획, SNS를 이용한 마케팅과 판매 기법이 조화를 이룬다면 자바시장도 '패션의 실리콘밸리'로 다시 태어날 기회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바에 젊은이들이 꼬이고 창업열기를 확산시킨다면, 고급스러운 패션시장으로 자리매김도 가능하다는 제안이다.

"1세대들의 은퇴와 2세대들의 새로운 도전으로 다른 자바가 되는 것이지요. 꼭 2세들이 의류업체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미셸 박 스틸이나, 데이비드 류, 또 오는 6월 6일 연방하원에 도전하는 로버트 안처럼 정치 분야에서 뛰어도 좋아요. 그들이 한인경제의 젖줄이라는 자바와 한인기업, 한인 커뮤니티를 위한 폭 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자바시장도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액티브 USA 돈 이 회장 약력

▶영남대학교 명예 경영학 박사 ▶대륜고등학교 졸업 ▶영남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현 샌피드로패션마트협회 회장 ▶현 태평양은행 이사 ▶현 새한뱅콥 OB 초대 회장 ▶현 세계한상대회 리딩 CEO ▶현 경상북도 해외 명예 자문관 ▶현 회재 이언적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 ▶전 영남대학교 미주 총연합회 동창회 초대 회장


김문호 기자 kim.moon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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