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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갈등 속에서 한인은 희생양이었다"

한인 수백 명 4·29 폭동 '화병'으로 잠재
537명 정신과 치료…PTSD 증상 시달려

조만철 박사 25년간 환자 기록 보관해
"피해배상소송 필요하다면 적극 돕겠다"


1992년, 4·29 폭동 당시 정신과 상담 또는 전문의 치료를 받은 한인이 2000여 명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조만철 박사는 당시 1차 상담을 받은 한인 수는 2000여 명이었으며 이중 심각한 증세로 정신과 전문의 치료를 받은 한인만도 537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조 박사는 당시 LA카운티 보건국 아태상담센터의 디렉터로 일하고 있었으며 폭동 직후에는 연방재해대책본부(FEMA)와 연계해 폭동 피해자의 정신치료를 주도했다.

조 박사가 25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인 피해자 중 상당수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였고 이 중 64.8%(348명)가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증세가 심각했다. PTSD는 사고의 충격으로 정신적 고통이 이어지는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수면장애, 공황장애, 환각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한인 피해자들에게서 나타난 증상 중 주목할만한 것은 '화병'이라고 조 박사는 강조했다. 조 박사는 상담을 거치면서 피해 한인의 상당수가 '화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가진단서에 화병에 대한 질문을 추가했다.(화병은 울화병이라고도 하는데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한스러운 일을 겪으면서 쌓인 화를 삭이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조 박사는 "이 질문을 받은 193명 중 70%가 화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며 "이는 폭동으로 인한 억울함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25년 전 피해자들이 작성한 질문지를 살펴본 결과 정부와 언론들에 대한 불신이 컸던 것을 알 수 있었다. 40대의 한 남성 피해자는 "미국에 회의를 느낀다. 마치 인종 전시장 속에 한인을 마치 동네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인종차별 없는 고국이 그립다", 또다른 피해자는 "정부로부터 피해 보상을 정당하게 받고 싶다"고 적어 놨다. 이외에도 "총 대 총으로 싸워 보고 싶다"며 분노를 표출하는 피해자가 있는가 하면 "SBA융자액이 너무 적어서 비즈니스를 다시 열 수도 다른 업체를 인수할 수도 없다"며 절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 박사는 "LA한인타운만 정부가 보호하지 않고 방치했으며 폭동의 원인을 한흑갈등으로 몰아가는 주류사회에 대한 반감과 억울함이 화병으로 드러난 것"이라며 "피해자에게 4·29 폭동은 아메리칸 드림에서 아메리칸 악몽으로 전환된 끔찍한 사건으로 남게 됐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한인들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는데도 한인 피해자 중 누구도 정신적 피해 보상이나 사과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 박사는 "혹시나 피해 한인들이 보상을 받는데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당시 정신과 전문 상담을 받았던 한인 중 500여 명의 진료 기록을 지난 25년간 보관하고 있었다"며 "지금이라도 정부로부터 정당한 피해 보상과 사과를 받는데 필요하다면 이 자료를 제공하고 증언하겠다"고 밝혔다.

변호사에 따르면 25년이 지났지만 소송제기는 가능하다.

LA폭동 당시 피해 한인편에서 소송을 제기했던 민병수 변호사는 "25년이 지났지만 소송제기는 가능하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인권소송은 싸우기 위함이지 승소를 기대하고 시작하면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장기전이 될 수 있고 실질적인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싸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세계 2차대전 당시 강제로 수용소에 끌려갔던 미국 거주 일본인들은 힘들었지만 오랜 소송으로 50여 년 만에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며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인권을 위해 또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싸워야 한다"고 전했다.


오수연 기자 oh.sooyeo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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