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아메리칸 악몽' 현재 진행형
4·29폭동 25주년: <2> 기억하려 애쓰는 사람들
말만 번지르르 기념식 안 나가
성금 온데간데…슬픔·분노 여전
지난 15일 오후 7시 LA한인타운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4·29 폭동 피해자 모임(회장 장진형)'을 찾았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이면 15~20명의 4·29 폭동 피해자는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일상을 나눈다. 폭동이 일어났던 1992년부터 25년째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며 세월을 버텨 온 이들은 폭동의 피해자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나눠 갖는다.
하와이언가든에서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는 주성호(62)씨는 "이 모임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한다"며 "이 시간을 위해 한 달을 버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무엇이 이들을 여전히 함께하도록 만드는 걸까. 주씨는 "폭동은 한 번도 제대로 기억되지 않았다"고 했다.
"매년 4월 29일이 돌아오면 기념식이다, 추모식이다 말만 번지르르했어요. 정작 피해를 입은 우리는 배제된 채로 4·29 폭동을 기념했지요. 피해자끼리는 폭동과 폭동 이후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니 계속 모인 거 아니겠습니까."
상처는 폭동 이후 더 깊어졌다. 의도적으로 재기를 방해한다고 느껴질 만큼 무리한 재영업 조건에 2~3년을 허송세월해야 했다.
서로를 위로하며 터전을 다져 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한국으로,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세월이 흘러 세상을 떠난 피해자도 많다.
장 회장은 "폭동 당시에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연령층이 50~60대였는데 현재는 대부분 돌아가셨다"며 "우리도 벌써 나이 70을 바라본다. 우리가 은퇴하고 나면 누가 4·29 폭동 피해자를 기억하겠느냐"며 씁쓸해 했다.
미국과 한국에서 수천만 달러 성금이 모였지만 이들에게 돌아간 건 가구당 3000달러가 전부였다. 임성일(69)씨는 "여러 한인 단체에서 우리를 위한답시고 성금을 모았다. 하지만 정작 성금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그 성금을 어떻게 쓰는지는 밝히지도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험한 세월, 이들을 버티게 한 건 자식이었다. 하지만 무너진 삶의 터전을 다시 세우느라 어린 자식에게 제대로 온정을 쏟지 못한 게 아직도 마음에 사무친다.
그 미안함을 속죄하듯 4·29 폭동 피해자 모임은 10년째 매달 500달러를 청소년을 지원하는데 기부한다. 이들이 4·29 폭동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폭동 25주년을 맞는 29일, 수많은 한인단체가 각종 행사를 열어 이날을 기념하지만 정작 이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입을 모아 "4·29 폭동을 치부로 여기고 상징적인 사건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며 "지금이라도 그 안에 얽힌 한인사회의 문제를 파헤쳐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정부 지원도 받고 재기에도 성공해 떵떵거리며 산다'는 오해가 아직도 많이 퍼져 있어요. 우리가 바라는 건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 명예 회복을 하는 거지 매년 추억거리로 남는 게 아닙니다."
잊혀진 일이 돼 가는 4·29 폭동은 이들에겐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되는 역사다.
<관계기사 2면>
김지윤 인턴기자 kim.jiyoon2@koreadaily.com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