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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단독 인터뷰 "오랜 독방…함께 있고 대화하는 게 어색"

'김경준의 주홍글씨'BBK를 말한다 - 프롤로그

MB(이명박)도 적폐청산 대상'에 동의
관련 청문회 열리면 증인 참석 기꺼이


-한국에서 돌아와서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나.

"13년간 수감생활을 했다.(한국 인도 전까지 LA 연방 구치소에서의 3년 6개월과 한국에서 9년 4개월을 합한 기간)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았다. 운전면허도 다시 신청했는데 운전 자체도 생소했다. 종합검진도 받았다."

-적응하기 어려운 것은.

"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구속된 뒤 계속 독방에만 혼자 수감됐다. 대화상대가 교도관밖에 없었다. 그렇게 10년을 독방에 있다 보니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직 어색하고 불편했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

-한국 수감생활은 어떤 의미인가.

"지옥. 단테는 신곡(The Divine Comedy) 천국편에서 '지옥은 모든 희망이 없는 곳(hell is where no hope exists)'이라고 묘사했는데, 내게 교도소가 그랬다. 모두가 나를 벌했고, 나를 비난했고, 나를 죽이려 했다. 난 모든 희망을 박탈당했다. 모두가 나를 파멸시키고 MB가 자신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기만을 원했다. 부모님마저 누나를 살리기 위해 날 버렸고, 내 변호사라는 자들마저 변호는 하지 않고 나를 이용한 뒤 버렸다. 좌절과 절망뿐 희망이 없는 하루하루가 수감생활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전체가 내게는 교도소, 즉 지옥이었다."

-변호사가 버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한국 송환된 첫날 내 변호사가 만나자마자 수임을 못하겠다고 했다. 기자들의 취재 경쟁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겠다고 했다. 그후 수임한 김정술 변호사는 날 변호하지 않고 내게서 정보만 빼내 언론에 공개했다. 아무도 나를 위한 변호를 하지 않았으니 재판 결과는 뻔했다"

-독방에만 수감된 이유는.

"내 모든 행동들이 감시 대상이었다. 난 2급 그리고 마지막 3년은 1급 수용자였는데도 상대적으로 자유가 제한된 3급 교도소에 수감됐다. 다른 수용자들과 달리 나와의 대화들은 모두 불법으로 녹음, 녹화, 기록됐다. 분명한 인권 침해다. 편지 역시 철저히 검열됐다. 이 사실은 법원이 모두 인정했다."

-본인은 무죄라고 생각하나.

"얘기하기 싫다. 말해봤자 이제 와서 무죄가 되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은 변명이라고 욕할 것 이고, 어차피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출소해서 미국으로 오던 날 외국인보호소에서 박범계(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만났다.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던데.

"난 그렇게 말한 적 없다. 다만 박 의원이 'MB도 적폐청산 대상'이라고 해서 나도 동의한다고 했다. 만약 청문회가 열린다면 증인으로 참석해 증언할 의향이 있다고 말해줬다."

-박 의원의 말에 동의한 이유는.

"MB가 비리의 원조이고 그로 인해 검찰이 현재 '정권의 눈치만 보는 쓸모없는 청산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LA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에게 1주일내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다.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한 적 없다. 다만, 기자들이 계속 따라오는 바람에 마중 나온 가족들이 내게 다가오지 못해서 '1주일 안에 연락하겠으니 제발 집에 가게 해달라고'고 했을 뿐이다."

-앞으로 기자회견을 하지 않을 생각인가.

"난 기자회견을 싫어한다. 차라리 한두 사람과 인터뷰하는 것이 더 편하고 효과적이다."

-줄곧 MB가 BBK의 실소유주라고 말해왔다. 그동안 공개하지 않은 새로운 증거가 있나.

"당연히 있다. 그리고 MB와 관련된 국정조사가 열린다면 그때 공개할 의향이 있다. 하지만 내게 공개할 것을 강요하지 말라. 나를 비난만했던 대한민국 국민에게 난 아무런 의무가 없다. 국정조사 역시 하건 말건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없다. 국민들이 하기 싫다면 하지 않으면 된다 ."

-MB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나.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1999년 초쯤이다. MB의 집사라고 알려진 김백준이 먼저 만나자고 연락해왔다. '대단하신 분이 한번 만나기 원한다'고 했고, 만나기로 한 곳이 MB가 소유했던 영포빌딩이었다. 약속시간인 아침 7시30분쯤 가서 회의실로 안내받아 들어가니 MB가 혼자 앉아 있었다. 날 보자 활짝 웃으면서 인사했다. 인터넷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하여, 난 인터넷으로 금융사업을 하는 회사를 설립 하는 아이디아를 제공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터넷종합금융회사' 설립을 추진하게됐다."

-왜 MB측에서 당신에게 먼저 연락했다고 생각하나.

"당시 언론에 내가 '연봉 24억을 버는 증권맨'으로 보도됐다.(1999년 2월12일자 매일경제는 그가 '270억원의 순익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방송에도 나오고 유명세를 얻었던 때다. 그리고 당시 내가 일하던 환은살로먼스미스바니 증권의 감사직을 외환은행쪽 사람이 맡았는데, 그 사람과 MB의 집사 김백준이 친했던 모양이다. 김백준이 당시 내 투자 실적이 사실인지를 확인했다고 들었다."

(이후 BBK 설립부터 검찰 기소까지 과정은 이후 다른 기사에서 소개한다.)

-빨리 한국에 가서 조사받지 않고 3년간 연방구치소에 있었던 이유는.

"이명박 및 다스가 미국에서 소송을 걸었다. 이명박이 전략적 선택을 잘했다. 한국으로 가면 그 소송에 대응할 수가 없었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한국으로 송환된 날 검찰청 앞에 내리면서 '와우(Wow)'하고 웃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그 모습으로 김경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LA다운타운 연방구치소에서 3년 6개월 간 갇혀있다가 처음 외부로 나온 날이 한국에 송환된 날이다. 공항으로 이송돼 비행기에 탔는데, 좌석이 아니라 승무원들이 쉬는 공간인 '벙커'로 날 데려갔다. 그 좁은 공간에서 10여 명의 법무부 직원들과 13시간 내내 갇혀있었다. 용변도 제대로 못보고 밥도 부실했다. 공항에 내려 검찰청으로 가는 동안에도 나를 태운 밴이 고속으로 곡예운전을 해 멀미도 심했다. 그러다 검찰청 앞에서 내려 차고 신선한 공기를 맡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너무 많은 기자들이 와서 이게 뭔가하고 어이 없어 나온 말이다."

-본지를 통해 가장 알리고 싶은 진실은.

"난 내가 겪은 대로 진실을 말할 것이다. BBK 사건에 대해 언론은 편한 대로 원하는 대로 보도했고, 국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내가 무엇을 말해봤자, 대한민국 국민들은 날 욕하고 비난할 테지만, 상관없다. 듣기 싫다면 (기사를) 읽지 않으면 된다."

☞ 어떻게 취재했나

취재는 김경준이 보낸 이메일로 시작됐다. 그가 LA에 도착한 지 9일만인 지난 7일이었다. 내용은 '묻고 싶은 질문이 어떤 것인지 말해달라'는 영어로 쓴 한 문장이었다. 취재 의도를 설명한 기자의 답신에 그는 전화를 걸어 '만나겠다'고 했다. 11일 처음 만나 17일까지 4차례 LA한인타운 모처에서 인터뷰했다. 첫날은 녹취나 메모를 허락하지 않았다. 정식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취재 방향과 기사 형식, 분량 등을 놓고 조정을 해야했다. 김경준은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었기 때문에 왜곡된 보도를 경계했다. 그래서 본인이 화자로 증언하는 방식을 택하되 취재 기자가 기본적인 팩트는 확인하기로 했다. 첫 기사는 4차례 인터뷰 내용을 축약하고 이메일 추가 질문 내용을 문답형식으로 정리했다. 전체 녹취 파일은 7시간 30분 정도, 글로는 A4용지 90여 페이지 분량이다.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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