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으로 날면서 15대의 비행기를 폭격한 후…"
육성으로 듣는 미주 한인 초기 이민사:외로운 여정(49)
아이다호 시골 소년의 꿈 프레드 오(하)
아시안 대부분은 중국계
나 자신 증명위해 중압감
애국심 보이려 최선 다해
1943년 나는 북아프리카 튀니지와 알제리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메리칸 비글'로 불리는 2전투비행부대에 배치되었다. 아프리카에서의 임무가 끝난 후 우리 부대는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어 시실리, 사디니아 그리고 코르시카 등에서 싸웠다. 2년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나는 치열한 전투에 150회 이상이나 참여했다. 또한 독일군 비행기 여섯 대를 격추시켰다. 우리 부대에는 약 30%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나는 여러 번 공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한 번도 부상을 당한 적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전투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물론 걱정은 됐지만, 미리 훈련을 받아 다른 동료들에 비해 준비가 잘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반복해서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어떻게 다른 사람을 향해 총을 쏘고 죽일 수 있냐며 묻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당연히 해야 할 임무였다. 우리는 힘들고 고된 환경 속에서도 주어진 임무를 완수할 책임 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훗날 나는 비행대의 리더가 되었고, 그로 인해 나의 태도가 바뀌게 되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적군의 비행기를 격추시키지 않아도 되었다. 그 대신에 나는 동료 비행사들이 전투에서 살아남도록 호위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나는 리더로서 다른 비행기가 무사히 귀환한 후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은성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내가 완수한 임무 중엔 플로이 에슈티 기름 생산지 공격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기지에서 640km 떨어진 지역에서 공격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당연히 내가 마지막 비행기라고 생각하고 그 곳을 떠나려고 했는데 비행기 한 대가 반대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 비행병에게 어디로 가냐고 통신을 보내면서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또 180도 방향을 전환시켜 왼쪽으로 돌아서 올 것을 지시했다. 비행병이 나의 지시대로 비행기의 방향을 바꾸고 있던 중 갑자기 독일 비행기 한 대가 뒤편에서 나타났다. 다행히 독일 비행기는 나의 동료 비행기를 공격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처 나를 보지 못했다. 나는 이 상황을 이용해 독일 비행기를 격추시켰다.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부대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동료 비행병의 실수를 정확히 짚고 넘어갔다.
"반대쪽으로 가고 있었던 걸 알고 있나? 그래 나도 그 상황을 이해해. 넌 너무 흥분해서 방향을 잃어버렸고, 그 때문에 엔진도 심하게 흔들렸을 테지."
▶전쟁 중에 다른 미주 한인과 만난 적이 있나?
훈련 중에도 나는 유일한 한국계였다. 또 몇 안 되는 아시안이었다. 아시안의 대부분은 중국계였다. 전쟁 중 다른 한국인을 만난 적은 없지만,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근무하고 있었을 땐데, 우리 비행중대는 폭격기를 호송하고 있었다.
나중에 집에 와서 들은 이야기로는 사촌 조지 홍이 우리가 호송했던 B-17 폭격기를 몰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바로 사촌을 호송했던 것이다. 삼촌인 잭슨 박도 역시 폭격기 총사수였다. 통신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합류했다가 우연히 삼촌을 알게 되었고 결국 이탈리아에서 삼촌을 찾았다. 삼촌을 놀래주려고 와인과 다른 물품들을 사가지고 찾아갔었다. 내가 사간 물품들은 일반 사병들은 접할 수 없는 물품들이었고, 우리는 즐거운 오후 시간을 함께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주 후 삼촌은 그만 이탈리아 전선에서 총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다.
▶전쟁 중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어떠한 인종차별을 경험했나? 혹시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끼기도 했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항상 제일 잘하고 싶었다. 아시안이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애국심을 보여줘야만 했다. 즉 무슨 일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잘해야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있을 때 나와 친분이 있던 한 대령이 공식 문서 같은 걸 들고 내게 다가왔다. 잠깐 같이 걷자고 하면서 대령은 이상하게도 아무 말이 없었다. 말없이 그냥 걷는 게 상당히 심각한 상황처럼 느껴졌다. 대령은 밖에 나와 자신이 들고 있던 종이를 보여주었다. 한 통의 서신이 었다. 그 서신은 비행부대에 동양계 조종사가 있는지 묻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잘못하면 내가 미군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령에게 정말 그렇냐고 물었더니 그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대령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우리는 말없이 시간을 흘려보냈고 나는 마침내 대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서 이렇게 전해달라. 프레드 오는 아주 참혹하고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러 나갔는데, 그 임무가 너무 힘들고 두려워 백인으로 변했다!"
내 말에 대령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잘 알겠다며 돌아갔고, 그 후 이 일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그날은 플로이에슈티 유전을 폭격하는 날이었다. 우리는 폭격기를 호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날씨가 좀 더 좋았으면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비행기도 몹시 흔들렸다. 우리 비행중대가 제일 먼저 하늘로 날았다. 다른 비행중대가 뒤이어 이륙하자 날씨가 더욱 나빠졌다. 그래서 우리의 임무는 취소되었고, 각 비행기들에게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나쁜 날씨 탓에 라디오 통신이 불안정한 관계로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계속 목표물을 향해 전진하라!"는 소리만 들렸을 뿐이다. 좀 더 원활한 라디오 교신을 위해서 나는 다른 채널로 바꾸었다. 유고슬로비아 해안가 상공을 높이 날고 있을 때 눈앞에 구름이 걷히는 것이 보였고, 30분 정도 지나니 구름이 조금 있긴 했으나 맑게 갠 하늘이 펼쳐졌다.
이윽고 라디오로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우리 부대원 모두 내가 어떤 공격물을 정했는지 알고 있는 듯 적진 깊숙이 들어갔다.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다. 나는 이전에도 이곳의 유전을 공격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공격물을 유심히 살피면서 북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었다. 나는 유전을 보호하기 위해 적군의 비행기가 많이 포진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군은 진영 깊 숙이 위치한 유전을 우리가 공격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비행기가 보이지 않도록 위장하기 위해서 유인책이 필요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습 공격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무엇을 공격할 것인지 마음속으로 결정해놨다. 우리는 위장 전술로 공격 준비를 완료했고, 드디어 유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공격의 마지막 순간, 나는 50피트를 급상승하여 유전의 서쪽으로 갔다가 급강하하면서 오른쪽으로 90도 돌렸다. 우리는 서로 매우 가깝게 비행하고 있었지만, 내 옆에 있던 다른 비행기들이 어떻게 방향을 돌렸는지 몰랐다. 우리는 나무 위로 가까이 접근했기 때문에 새들이 앉아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제 적군 비행기들이 비행장에 줄 서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엄청나게 많은 비행기들이 정착해 있었다. 나는 상당히 낮은 비행을 하고 있었는데, 적군 기관총이 내 비행기의 왼쪽을 명중시켰다. 그리하여 비행기에 구멍이 생기면서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여전히 저공비행을 유지하면서 과감하게 폭격을 가했다. 아마 15대의 비행기를 폭격했던 것 같다.
폭격 후 다시 상공으로 오르기 시작했는데, 너무 흥분한 나머지 내가 얼마나 빨리 비행하고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했다. 나의 흥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비행기 앞부분을 아래쪽으로 내릴 수가 없어, 궁여지책으로 방화벽 받침대를 밀었는데 다행히 비행기 앞쪽이 내려가면서 하늘을 날 수 있었다. 어떻게 비행기가 그 상태에서 추락하지 않고 날았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아까 나를 쏜 적군의 기관총들이 마구 쏘아대고 있었다. 그들을 제거하려고 열심히 공격했지만, 기관총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공격을 가했고, 이제 유전은 불바다로 변했다. 이 공격 작전을 수행하면서 우리 비행기들도 적군 기관총의 사격을 받아 많이 추락했다. 참 슬픈 기억이다.
적군은 우리의 기습 공격에 당황했다. 적군 진영 깊숙한 곳에 위치한 유전을 기습 공격하여 불바다로 만든 것은, 소수의 용감하고 헌신적인 비행사들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이경원 저·장태한 역
'외로운 여정'에서 전재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 제공
정리= 장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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