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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부활의 믿음

김정국 골롬바노신부 / 성 크리스토퍼성당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그리스도교 신앙이 갖는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가 성찰해본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하신 기적 중에 죽었던 사람을 다시 살리신 사건을 기억한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일(마르 5,41)과 장례행렬에서 만난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일(루카 7,11-15), 그리고 베타니아의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일(요한 11,1-45)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다시 살아난 일과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요한 복음은 라자로를 살리신 사건을 예수님께서 주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과 연결시키고 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하고 예수님은 선포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은 라자로를 되살리신 이 사건은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유다인들의 지도자들이 결정적으로 예수를 죽일 결의를 굳히게 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라자로를 부활시키심으로써 생명의 주인이신 당신 능력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반대자들에게는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일을 물리적 세계에서 부인할 수 없었기에 그 일로 말미암아 몰고올 파장에 두려움이 앞섰고 그래서 그분을 제거해야 할 이유를 느꼈던 것이다. 우리 신앙인에게도 라자로를 살리신 일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세상에 정말 죽은 사람을 살려낼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기적은 생명의 주인이시요 부활 자체이심을 스스로 밝히시는 계기가 된다. 또한, 라자로가 다시 살아난 사건은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보게 될 부활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다. 라자로의 부활은 죽었던 사람이 되살아난 사건이다. 그는 되살아나 이 세상의 삶을 일시적으로 더 연장하여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예수님께서 이루는 부활은 신앙을 통해 알아보게 되는 일이다. 라자로의 부활은 단지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미리 예견하게 하는 표징일 뿐이었다. '표징'이라는 것은 진짜로 보여주고 알려주려는 것을 직접 보여주거나 알려줄 수 없을 때, 다른 것을 통해서 본래의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신앙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부활한 예수님의 사건은 빈무덤과 목격담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부활하신 분에 대한 목격담도 라자로의 소생에 대한 목격담과는 다르다. 신앙인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죽은 사람을 살리신 일을 통해 생명과 관련된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믿게 되고 그분이 수난과 죽음을 겪으시고 부활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의 승리를 우리에게 가져다주셨다는 것을 믿는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라자로나 다른 이들을 되살리신 일과 분명히 차원이 다른 사건이다.

부활을 '파스카'라 부른다. '건너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말에서 유래한다. 주님께서 이루신 부활은 이세상에서의 계속되는 삶이 아니고, 이 세상의 한계를 넘어서서 얻는 영원한 삶이다. 시간의 제약을 넘어서서 하느님 안에 갖는 차원이 다른 생명을 말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의 부활의 사건에 대해 르포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 실존 안에 살아계신 그분에 대한 확신을 증언하게 되는 것이다.

bano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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