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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처음처럼

박재욱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법사

족히 허벅지까지 차오르고도 남을 성 싶다.

한낮을 지날 즈음 두어 차례 소나기가 훑고 지나더니, 그새 냇물이 많이 불어 있었다.

두 스님은 흐르는 물만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심한 듯한데, 그리 멀지 않은 아래쪽에 곱게 차려입은 젊은 아낙은, 갈 길이 멀어서인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해는 벌써 뉘엿한데 물은 쉬이 빠질 것 같지가 않다.

그 때다. 갑자기 걸망을 팽개친 어른스님이 쏜살같이 달려가 그 아낙을 들쳐 업고는, 냅다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워낙 졸지에 당한 일이라, 아낙은 도리 없이 낯선 스님의 등짝에 붙어 어쩔 줄 몰라 한다.

얼결에 어른스님의 걸망을 챙겨 맨 시자도, 꼬랑지에 불붙은 들쥐마냥 후다닥 스님 뒤를 따라 붙는다.

허벅지를 밀어 붙이는 물 힘이 가당찮다. 냇물을 반 넘어 밀고 건너자 힘에 부친 스님이 자주 비틀댄다. 그럴 때마다 움찔움찔 놀란 아낙은 두 팔로 죽어라 스님의 목을 잡아끌고, 두 발로는 스님의 허리통을 더욱 조아 부친다. 입으로는 비명인지, 뭔 소린지 모를 소리를 연신 토해낸다.

뒤따르며, 그 민망한 꼴을 흘끗흘끗 훔쳐보든 시자는 자빠지고 미끄러지고, 눈망울이 토끼눈이 되었다, 도끼눈이 되었다 대단히 바쁘다.

엎어질 듯 간신히 내를 건넌 스님은 곧장, 목에 걸린 아낙을 내동댕이치듯 땅바닥에 내려놓는다. 남이 볼 새라 쩔쩔매고 있는 아낙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한 숨 돌릴 틈도 없이 걸망을 받아 메고는 훠이훠이 길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태연스런 어른스님과 달리, 오늘따라 시자는 자꾸만 돌부리에 발부리가 걸려 휘청댄다. 아무튼 두 스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스레한 산길을 묵묵히 걷고 걷는다.

산의 깊은 품에 잠겨 까막대든 절집이 어느 듯 눈에 바투 잡힐 무렵, 그때까지 뒤틀린 심사를 물고 있던 시자의 입이, 기어코 되바라진 소리를 뱉고 만다.

'스님! 명색이 출가한 스님으로 여염집 아낙을 보쌈 하듯 등에 메고는, 얼씨구 신바람이 나서 쥐었다 놓았다, 내렸다 올렸다 해서야...' 그 틈새를 비집고 시자의 말꼬리가 사정없이 잘려나간다. '허허! 이놈 보소. 놓고 온지가 언제 적인데, 그래 네놈은 여태, 그 아낙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고? 고연 놈허고는!'

외부로부터 일정한 에너지를 받아 마음의 평형이 깨어지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데, 평정의 회복에 걸리는 시간을 심리학에서는 '이완시간'이라고 한다.

불교수행은 화두잡도리나 마음챙김(sati) 등으로 마음의 근력인 이른바 '회복탄력성'을 강화시켜, 외부자극이나 내적변화로부터 평상심을 유지하거나, 깨진 평정회복에 걸리는 '이완시간'의 최소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이다. 나아가 처음마음자리이며 궁극적 이완인 절대평온에 이르게 함이다.

동중정(動中靜) 움직이되 바위처럼 고요하게, 정중동. 머물되 바람처럼 자유롭게, 매순간 '처음처럼' 사는 이를 성자라 부른다.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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