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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비워야 드러나는 맑은 여유

박 재욱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법사

어느 날,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이 '사람'을 찾기 위해 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닌다는 기인을 찾았다. 마침 그는 빈 물통 속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이시다. 예를 갖춰라" 호위 무관의 호령에, 그때까지 통 속에서 꼼짝도 않던 그가 던진 일갈, "나는 개 같은 디오게네스요"

대왕이 나선다. "그대는 내가 두렵지 않은가?" "묻겠소이다. 대왕은 선한 사람이오?" "그렇다면?" "그렇다면 내가 뭣 때문에 선한 자를 두려워하겠소!"

한동안 망연히 서 있던 대왕이 슬며시 웃으며 나직이 묻는다.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 디오게네스의 대답이 득달같다. "햇볕을 가리고 있소이다."



무욕은 욕망하는 자를 한 순간 초라하게 만드는 법.

돌아서며 입에 문 대왕의 구시렁거림이다.

"내가 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텐데…." 질세라, 디오게네스의 비아냥거림이 대왕의 등 뒤에 꽂힌다. "내가 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알렉산더 외에 세상 어느 누가 되어도 좋소이다!"

개(같은 철학자)가 되고 싶은 대왕이, 대왕이 되고 싶지 않은 개에게 무참히 물어뜯긴 잘 알려진 전설이다.

알렉산더(BC 4세기께)대왕은 그리스를 벗어나 인근 대륙을 정복해가며, 종국엔 세계를 하나로, 대 통일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원대한 욕망을 품고 있었다.

한편 디오게네스는 자칭, '개 같은 디오게네스'였다.

그는 세속의 도덕과 관습, 형식과 편견을 무가치한 것으로 경멸했으며, 개처럼 떠돌면서 허영과 위선에 젖은 아테네의 속물들을 냉소와 조롱으로 가차 없이 물어뜯어, 시대와 길항의 삶을 살게 된다.

그가 추구한 이상적인 삶은 무욕과 무소유로 지금에 만족하며, 주면 먹고 아무데서나 잠을 자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개 같은 자연스러움과 자유였다.

실제 그는 빈 물통 속에서 넝마 한 벌과 물을 떠 마실 표주박, 그리고 개들과 함께 살았다. 그 표주박마저도 혀로 물을 핥는 개를 보고는 내동댕이친다.

아무튼 세계를 호령했든 대왕도 서른셋 꽃다운 나이에 한 마디, 허망한 '빈손의 메시지'를 남기고 떠난다.

"관 밖으로 내 두 손을 펴서 내놓도록 하라."

희한히도 대왕이 거한 날, 디오게네스도 '이 몸뚱이를 동물의 먹이로 던져주라'는 말을 뱉고는 끝까지 무소유의 삶을 살다, 스스로(?) 숨을 멈추었다고 한다.

그의 자연적 순수성에 대한 예찬과 회귀사상은 배금과 물신주의에 함몰된 오늘날, 여전히 생명력을 지닌다.

그러나 공존공생을 위한 보편타당한 도덕적 가치와 감정마저 배척한 그의 삶은, 무욕을 위한 무욕, 무소유를 위한 무소유로 전락한다. 그것은 왜곡된 또 다른 욕망이며 버려야할 집착이다. 그는 빈 통 속에서 자기도취적인 작은 자유와 행복만을 누렸을 뿐이다.

대 자유, 쥔 것은 놓아버리고 채운 것은 비워서 드러난, 청빈 속 걸림 없는 한가로움과 맑은 여유가 부럽다.

'도둑이/들창에 걸린 달은/두고 갔구나'(료칸의 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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