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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도깨비를 만나다

안 성 남 / 수필가

고정관념이 하나하나 깨뜨려지고 있다. 처음 하나를 깨뜨릴 때에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자주 깨뜨려지면서 유행처럼 되었고 이제는 너무 흔한 일이 되어 아무도 바라보지 않으며 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전에는 흑백논리로 좋은 편에 서는 것과 나쁜 편에 서는 것이 분명했다. 하얀 모자는 좋은 사람이고 검은 모자는 악당이었다. 나쁜 쪽의 것들은 마녀·요괴·공룡·귀신·괴물·거인 등이었고 왕자와 공주, 기사, 선비 등은 좋은 편에 서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단순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착한 마녀도 있고 웃기는 귀신도 있고 인정 많은 괴물도 있고 친구 같은 거인도 있다. 공주도 악한 계교를 꾸미고 얼간이 같은 왕자도 있고 잘 차려 입은 선비도 비열한 인간일 때가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며칠 사이에 급히 친해진 좀 별나고 무서운 이름이 있다. 가끔은 엉뚱한 실수도 저지르며 산속에 산다는 무서운 괴물 도깨비가 그 이름이다. 이름 자체도 그렇고 생김 생김도 그렇고 품고 있는 이야기도 그렇고 무섭지만 웃기는 절반 정도 사람이고 대체로 짐승인 옛날 이야기 속 주인공이다. 옆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 친근하게 느껴지는 친구는 아니었는데 잠시 사이에 그리운 이름으로 바뀌었다. 말 그대로 도깨비 장난 같은 사실이다. 말도 되지 않는 엉뚱하고 기상천외한 일을 도깨비 같다고 말하는데 그 이름이 그렇게 정감 있는 이름이 되어버린 것이 그 말 그대로다. 어쩌다 사람의 모양으로 사람 사는 세상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정말 사람의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리 나쁠 것도 없을 듯하지만 속에는 도깨비가 들어앉은 것들이 사람 얼굴을 내밀고 우리 옆에서 오가고 있다면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닐 듯 싶다.
많은 사람들이 도깨비방망이를 그리워한다.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갖고 싶은 방망이지만 천일야화의 알라딘 마술 등잔이 있지 않은 것처럼 그런 방망이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찾아 헤맨다. 그래서 가끔 부조리한 사회 풍토 속에 독버섯으로 피어난 이상한 수단이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손에 들어온 어떤 기회나 능력을 도깨비방망이로 착각하고 두드린다. 자기도 모르게 어떤 사람의 도깨비방망이가 되어 흔들리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가 사람들을 슬프게 만들고 자신도 속없는 뿔난 도깨비가 되어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파란 하늘 아래 스러져 내리는 허무한 괴물 그림이 되어 버린다.
사람들이 엉뚱하고 신기한 것만 쫓아다니는 때인 것 같다. 바꿔 말하면 도깨비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 가는 것 같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방망이로 두드리면 무엇이든지”라고 노래하던 아이들 동요처럼 정말 그 나라에 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길을 가다가 도깨비를 만나면 혼비백산하던 옛날과 달리 종로 거리에서 마주쳐도 달려가 반가워하며 손잡을 것 같다. 만능의 도깨비방망이를 소유하고 싶어서.
도깨비가 춤을 추는 세상, 도깨비 나라에 들어간 영감님은 어찌 되었을까. 도깨비를 속이고 겨우 사람 세상으로 돌아왔다. 사람은 도깨비 세상에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세상에서 살려면 산속에서 기괴한 춤을 추며 도깨비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 역시 도깨비는 도깨비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그래서 아직은 도깨비가 되어버린 사람의 이야기보다 사람이 되어버린 도깨비 이야기가 더 받아들여진다.
어떤 고정관념으로 겉만 보고 좋고 나쁘다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다 말해진다.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참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사람과 도깨비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며 고정관념을 없애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생각들이다. 겉모습이 왕자이든 도깨비이든, 선비이든 괴물이든, 공주이든 마녀이든 그 속에 뿔난 짐승의 마음이 아닌 제대로 사람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음습한 도깨비 세상을 깨뜨리는 길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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