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트럼프의 미국…낙태 규제 부활하나

1월만 되면 낙태 찬반 논란 불거져
1973년 '로우 대 웨이드' 판결 원인

트럼프 행정부 낙태 금지 규제 부활
'반트럼프' 바람 타고 반대 거세져
곳곳에서 대규모 맞불 시위 개최
낙태, 여론은 찬성ㆍ정책은 반대


1973년 1월 23일. 일명 '로우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을 통해 미국에서 낙태가 허용했다. 이날은 미국에서 낙태에 대한 인식이 본격적으로 전환점을 맞이한 날로 기록됐다. 그런 이유에서 1월 한 달은 늘 '낙태(abortion)' 문제가 이슈가 돼왔다. 낙태는 사회문제이기에 앞서 이면에는 '종교적 신념'이 핵심 쟁점으로 작동한다. 여성의 권리를 우선하는 인본주의와 생명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신의 섭리하에 있다는 신본주의와의 충돌인 셈이다. 1월23일 전후로 곳곳에서는 양측이 각각 시위 및 행진을 벌였다. 현재 미국의 낙태 이슈는 어느 지점에 와있을까. 지난 한 달간 곳곳에서 벌어진 낙태 찬반 논란 등을 통해 알아봤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지난 8년간 오바마 정권에서 미국이란 거대한 배는 왼쪽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지난 20일 보수 성향의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미국은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종교와 맞물려 논란이 됐던 사회적 이슈들이 하나둘씩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그 중 '낙태'는 가장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낙태와 관련된 찬반 논란은 대개 '트럼프'와 엮인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 다음날인 21일 50만 명의 여성들이 워싱턴DC에 대규모로 모였다. 일명 '여성들의 행진(The Women's March)'. 이들은 여권 신장을 외치며 낙태 규제 완화를 비롯한 여성과 관련된 각종 정책을 두고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했다.

분노의 시위는 금세 전국으로 번졌다. 여성들의 행진은 LA, 시카고, 뉴욕, 보스턴 등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됐다. 500개 이상 도시에서 370만 명 가량이 모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트럼프의 '우클릭'을 우려한 여성들의 외침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23일 낙태 시술이나 낙태 관련 정보를 제공하거나 낙태 합법화 지원 활동을 펼치는 비영리단체 및 비정부기구에 연방정부 자금 지원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행정명령 서명으로 인해 과거 낙태를 반대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제정한 '멕시코시티 정책(1984년ㆍ낙태 상담 및 시술을 하는 해외 기관에 대해 자금지원을 금지하는 조치)'을 다시 부활시킨 셈이다.

현행법상 미국의 연방 예산을 낙태가 합법인 나라에 지원하지 못하도록 돼 있지만, 이번 조치는 가난한 나라에서 낙태 관련 상담을 하거나 낙태 반대를 지지하는 NGO의 모금조차 금지한 것이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첫 정례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낙태에 반대해 왔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포함한 모든 미국인의 생명을 옹호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낙태 반대를 외쳐온 미국생명권리위원회, 생명수호학생회 등 기독교 및 비영리단체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미국의 우향우 정책에 따라 대규모 맞불 시위도 개최됐다.

27일 워싱턴DC에서는 연례 낙태반대 집회인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Life)'이 열렸다. 올해로 44회째(1974년 시작)를 맞는 이 대규모 집회는 수십만 명이 참여할 정도로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집회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켈리엔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이 참석했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 또는 부통령 등 공직자가 직접 참석하는 것은 집회 사상 처음 있는 일로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연설에서 "(대통령은) 납세자의 세금이 낙태와 낙태 시술자에게 쓰이는 것을 끝내기 위해 의회와 함께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펜스 부통령은 또 하나의 큰 약속을 했다.

내달 2일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연방대법관 지명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헌법에 명시된 대로 신이 주신 자유를 옹호하는 인물을 지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연방대법관 임명은 기독교계에 가장 큰 화두다. 연방대법관은 향후 기독교와 관련된 각종 이슈와 판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미 3명으로 압축된 후보자들(윌리엄 프라이어ㆍ닐 골서치ㆍ토머스 하디먼) 모두 낙태 및 동성결혼 등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강경 보수 성향의 인물들로 알려져 있는데, 앞으로 낙태 이슈와 관련된 정책 설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낙태에 대한 전반적인 여론은 어떨까.

26일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미국인들의 낙태 찬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59%가 낙태를 찬성했다. 10명 중 6명이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고 있는 셈이다.

종교별로도 분석해봤다. 백인 복음주의자의 경우 76%가 "낙태는 윤리적으로도 잘못된 선택"이라고 답했다. 가톨릭도 절반 이상(51%)이 낙태를 반대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낙태율은 연방대법원이 지난 1973년 낙태 합법 판결을 내린 이후 오히려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17일 거트마커연구소(Guttmacher Institute)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미국 내 낙태 시술은 총 92만6190건으로 전년(95만8700건)에 비해 감소했다. 이는 가임여성 1000명당 14.6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낙태율이 가장 낮았던 1973년(1000명당 16.3건)과 비교했을 때 가장 낮았다.

------------------------------------------------------------------------------------------------------

"미국서 낙태가 이슈가 된 이유는?"

지난 1973년 1월23일은 일명 '로우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이 내려진 날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 전역에서 낙태는 불법이었다.

당시 텍사스주에 살고 있던 노마 매코비(가명 로)는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하자 낙태 시술을 받으려 했지만 법적으로 낙태가 불가능했다.

이때 노마 매코비가 여러 여성들과 함께 주정부를 대상으로 낙태 합법화를 위한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상대는 텍사스주 검사였던 헨리 웨이드 였다. 결국, 이날 미국 대법원은 노마 매코비와 여성들이 제기한 집단 소송에 대해 여성들의 낙태 권리를 인정하며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은 당시 미국 내에서 이슈화되면서 미국이 낙태를 합법화하는 시발점이 됐다.

하지만 지난 2005년 1월17일은 미국에서 낙태 인식에 대한 반전이 일어났다. 낙태 합법화의 시발점이 됐던 노마 매코비가 32년 만에 '로우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에 대한 항소를 제기하며 낙태 후회 발언을 한 것이다.

노마 매코비는 항소장에서 "나는 낙태 후 아이의 생명을 없앤 것에 대해 심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판결 이후 낙태를 했던 여성들과 생명이 사라진 수많은 아이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느꼈다"며 "이후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용서함을 통해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으며 이제는 다른 여성들을 심적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최대한 돕고 싶다"고 고백했었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