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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류·영상·소리에 의존 말라, 꿀잠 자려다 선잠 잔다

수면 보조 도구의 함정

잠을 잘 자는데도 '전략'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물소리.바람소리를 담은 애플리케이션(앱)은 수년째 인기 다운로드 순위에 들었고, 수면을 유도하는 유튜브 영상 없인 잠들 수 없다는 고민이 올라온다.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형성을 돕는다는 수십만원대 조명기와 수천만원대를 호가하는 침구류도 잠 못 이루는 밤을 파고들었다. 숙면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수면경제), 잘 자는 방법과 침구류를 조언해 주는 슬립코디네이터 같은 신조어가 숙면을 갈구하는 사람의 마음을 대변한다. 수면 보조 도구는 '건강한 꿀잠'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잘 자는 데 전략이 필요한 건 맞지만 보조 도구에 기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숙면에 영향을 미치는 빛과 소리, 온도, 습도를 적절히 조절하고 침대 위 습관을 점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속삭이는 소리에 금세 나른해지고 졸음이 와요."

이선주(27.여)씨는 매일 밤 유튜브에서 ASMR(자율감각쾌락반응) 영상을 찾아 듣는다. 잠자는 데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이 영상은 생활 속에서 한 번쯤 들어본 익숙한 소리를 영상으로 재현한다. 치킨을 먹을 때 튀김 옷이 바삭거리는 소리, 비누 표면을 조각칼로 서걱서걱 긁는 소리도 소재가 된다. 불면증에 효과를 봤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그 반대도 있다. '영상이 없으면 잠들기가 힘들다' '중간에 소리가 끊기면 잠에서 깨더라'는 얘기다.

수면 전문가는 ASMR 영상의 효과를 어떻게 볼까. 서울수면센터 한진규(신경과) 원장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일종의 최면 요법인데 의학적으로 숙면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잠을 자기 전 침대에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찾아보는 게 잠을 방해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만지는 시간이 길어지면 뇌가 각성하고, 수면을 방해하는 빛(블루라이트)에 많이 노출된다.

잠들기 전 영상에 의존하는 건 또 다른 수면 질환으로 악화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한 원장은 "잠 자기 전에 특정 행동.용품에 의지해야만 잠이 오는 수면개시장애란 게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수면 안대나 귀마개를 별다른 이유 없이 습관적으로 매일 쓰다가 안대.귀마개 없인 잠들지 못할 정도로 의존하게 되는 경우다.

한 원장은 "노인들이 TV나 라디오를 켜놓지 않으면 잠들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수면개시장애의 한 종류"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잠에 들 수는 있어도 수면의 질은 떨어진다. 소음.빛이 뇌를 깨워 숙면을 방해한다.

시중에는 불면 증상을 완화해 숙면을 돕는다고 광고하는 제품이 즐비하다. 그런데 과장광고를 했다가 적발된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침대나 안구 운동기구가 불면증 치료에 효과적인 것처럼 광고하고, 입에 끼우는 마우스피스류의 제품이 코골이, 수면무호흡증을 개선한다며 소비자를 현혹하는 것도 지적된다.

다양하게 나오는 기능성 베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코골이나 불면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최지호 교수는 "코골이는 수면무호흡증같이 뒤에 숨은 질환을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며 "시중에 나온 공산품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코막힘과 코불편감 같은 다양한 부작용을 부르기 쉽다. 최 교수는 "자칫 수면무호흡 치료 시기를 놓쳐 고혈압.부정맥.당뇨.뇌졸중 같은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만 높아진다"고 우려했다.

숙면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보조식품은 어떨까. 한 원장은 "식약처에서 인증받은 건강기능식품 재료는 해조류인 감태가 유일하다"며 "건기식도 식품일 뿐이므로 실제 효과는 미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면증에 효과가 있는 일부 제품도 있다. 최지호 교수는 "안대는 외부 빛에 민감한 불면증 환자에게, 인공조명은 시차적응이 안 되거나 불면증인 환자에게 추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주변 권유나 광고에 현혹돼 무턱대고 구입해선 안 된다.

빛·소음 등 침실 환경 먼저 점검

건강한 수면을 위해선 보조도구에 의지하기 전에 수면 환경과 습관을 점검하는 게 먼저다. 숙면에 영향을 미치는 건 빛과 소음, 침대 위 습관 등이다. 잠들기 두 시간 전부터는 조명을 어둡게 하고 잠들기 직전엔 간접조명을 써 눈에 빛이 직접 닿지 않게 한다.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어두워야 잘 분비된다. 촛불 하나 켠 밝기(10럭스)도 뇌를 자극하므로 침실은 어둡게 한다. 윤 교수는 "잠을 자겠다고 이른 시간인 오후 7~8시부터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잠을 자려고 집중하는 것 자체가 잠들기를 방해한다. 20~30분 안에 잠이 안 오면 스마트폰을 꺼내는 대신 일어나서 독서를 하거나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다. 침대에선 낮에 끝내지 못한 업무를 처리하는 등 다른 행동을 하면 안 된다. 머릿속이 복잡하다면 침대에서 일어나 다음 날 해야 할 목록을 적고 잠자리에 든다.

새벽에 깼을 때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하는 것도 삼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햇빛을 쬐어야 밤에 멜라토닌이 잘 분비된다. 한 원장은 "2000럭스 이상 빛을 30분 이상 쬐면 멜라토닌 분비를 돕는다"고 말했다. 햇빛이 쨍쨍한 날 조도는 10만 럭스, 아침 해가 뜨고 구름이 약간 낀 날의 조도는 약 5만 럭스다.

반면에 형광등이 달린 사무실에서 조도는 400럭스 전후다. 조도를 측정할 수 있는 휴대전화 앱을 활용해 밝은 곳에서 30분 이상 있도록 한다. 최지호 교수는 "수면의 질은 이런 생활습관 교정만으로도 개선할 수 있으므로 보조 용품을 무턱대고 사용하기 전에 주변 환경을 점검해 보는 걸 권한다"고 조언했다.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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