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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은 여행기]이탈리아 토리노

건물마다 골목마다 고고한 역사의 숨결이
박물관·미술관·대성당·궁전 등 다양한 볼거리
십자가의 예수 형상 새겨진 아마포 수의 유명

토리노는 2006년 제 20회 동계 올림픽경기를 치룬 도시다. 당시 독일이 1위, 미국 2위, 한국은 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여 7위를 기록했다. 이것은 중국(14위)과 일본(18위)를 뛰어 넘은 한국 동계올림픽 사상 최고의 성적이다. 당시 안현수(빅토르 안)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 3개와 동메달 한 개를 목에 걸었다. 대회 슬로건은 ‘열정이 살아 숨쉬는 이곳’이었다.

토리노, 그 열정의 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토리노에 도착해서 놀란 것은 볼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이집트 박물관, 국립 자동차 박물관, 영화 박물관, 현대 미술관, 토리노 왕궁, 태양 궁전, 피아트 공장, 대성당, 산카를로 교회 등 정말 대단한 도시였다. 이곳을 돌아보려면 최소한 3~4일은 필요한 듯 했다.

토리노의 중심은 산카를로 광장이다. 이곳은 명품 자동차 전시장이 되기도 하고 오페라의 야외무대가 되기도 하는 곳이다. 광장 주위에는 화려한 회랑과 오래된 카페, 레스토랑, 부티크, 초콜릿 상점 등이 자리잡고 있다. 광장 중앙에 말을 타고 있는 청동상은 카를로 마로체티가 조각한 것이다. 엠마누엘 필리베르토 공작은 1557년 성 퀸티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군주였다. 그리고는 국가(피에몬테)의 수도를 토리노로 정하고 법으로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도록 명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토리노 대성당은 성 세례 요한을 추모하며 1498년 건축된 건축물이다. 이곳이 유명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토리노의 수의를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배당은 생각보다는 수수했다. 측랑에는 여러개의 작은 예배당이 줄지어 있었다. 그 중에는 피에르 조르지오 프라사티 예배당도 있다. 프라사티는 24년의 짧은 생애를 가난한 사람들을 돕다 선종한 토리노 출생의 복자다. 미국 시카고에도 그의 이름을 딴 고등학교가 있을 정도로 많은 가톨릭 젊은이들이 그를 흠모한다.



토리노의 수의는 상처투성이 남자의 형상이 깃들어 있는 아마포(오래된 섬유)로 만든 수의를 말한다. 수의에 이런 현상이 숨겨져 있는 것은 1898년 이탈리아의 한 사진사(세콘도 피아)에 의해 밝혀졌다. 그는 수의를 촬영하고 인화의 과정에서 네거티브 이미지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만다. 이미지에는 가시면류관을 쓴 채 채찍질과 손목에는 못이 박힌 예수님 형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는 비판도 많았고 수의가 틀림없는 예수님 세마포라고 믿는 사람도 많았다. 1988년에는 과학자들이 세마포 샘플을 채취해 연대측정을 하여 중세에 만든 가짜라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후에 수의를 수선했다는 중세 기록을 발견하고 샘플 결과는 확실치 않다는 결론도 얻게 된다. 수의에서 발견된 꽃가루 연대 측정에서는 꽃가루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만 자라는 꽃이라고 발표됐다. 지금도 수의에 관한 진위 경위는 100%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아니다. 계속적인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토리노 추기경은 공문을 통해 말했으며 2010년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토리노를 방문하고 성의 앞에서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토리노의 스카이라인을 장악하고 있는 건축물은 몰레 안토넬리아나다. 원래 유대 교회당으로 설계했지만 위대한 건물을 지으려 했던 건축가 알렉산드로 안토넬리와 유대인들과의 불화는 컸다. 결국 유대교회당은 다른 곳으로 옮겼고 안토넬리가 혼신을 기울인 건축물은 그의 아들이 1889년에 완공했다. 안토넬리는 안타깝게도 1년 전인 1889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건물은 이후 몰레 안토넬리아나(엄청나게 큰 안토넬리 건물)로 불리며 토리노의 상징이 됐다. 당시 유럽에서는 가장 높은 석조건축물로도 이름을 올렸다.

건물 전망대까지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는 1961년 이탈리아 통일 100주년을 기념해 설치된 것이다. 167.5m 높이의 전망대에서는 토리노 시의 전경과 멀리로는 알프스까지 바라볼 수 있다. 2002년 부터는 이탈리아 국립 영화 박물관으로 변모했다. 박물관은 기본적인 원근법을 설명해 놓은 그림에서 부터 19세기의 만든 회전 채광판과 오래된 카메라 등 신기한 옛날 촬영기구들이 많이 진열돼 있다. 애니메이션, 서부 영화, 공상과학 영화, 3D 영화 등 주요 장르를 보여 주는 세트도 있다. 또한 거대한 3개의 스크린에서는 무성 영화 걸작들이 각각 20분씩 상영된다. 관람객들은 편안하게 의자에 누워 영화를 관람하기도 하고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영화는 사진의 원리를 이용 피사체를 연속 촬영하여 피사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영상매체를 말한다. 사람의 눈은 1초당 15프레임(화면) 정도가 들어오면 깜박임 현상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영화는 초기에는 16프레임을 사용했으나 현재는 24프레임이고 TV는 30프레임이다. 세계 최초의 사진촬영은 1826년, 여인이 노래 부르는 목소리가 녹음된 것은 1860년이다. 1878년에는 애드워드 머이브리지가 12개의 카메라로 말 달리는 장면을 촬영했다.

세계 최초로 움직이는 영화를 만든 사람은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다. 그들은 영화 촬영기를 발명하고 1895년 공장노동자들이 퇴근하는 장면과 열차의 도착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19세기 후반 사람들에게 움직이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실제로 열차가 달려 오는 것으로 착각한 몇몇 사람들은 도망갈 정도였다고 한다. 이탈리아 영화 중 필자가 가장 감명깊게 본 영화는 자전거 도둑이다. 언제 관람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알아 보니 1948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만큼 어려웠던 전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만든 걸작 중에 걸작이다. 원래 이영화는 미국인 제작자 요구에 의해 케리 그란트 주연으로 만들어질 뻔 했다. 하지만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이런 유혹을 거부하고 비전문 배우들만을 기용해 영화를 완성시켰다. 신사실주의의 자전거 도둑은 람베르토 마지오라니가 아버지역을, 엔조 스타이올라는 그의 어린 아들 역을 맡았다. 이후 두 사람은 모두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마지오라니는 1983년 사망, 스타이올라는 77세로 지금도 생존해 있다. 자전거 도둑은 역대 위대한 영화로 평가 받는 ‘시민 케인’을 능가하는 최고의 흑백영화다. 이 영화를 아직 모른다면 넷플릭스 또는 아마존을 통해 꼭 관람하시도록. 감동의 눈시울을 적시게 될 것이다.

글·사진: 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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